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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21 - 오세영의「그릇」

by 장돌뱅이. 2019. 6. 29.



'내가
드디어 그릇을 샀다'는 글을 본 지인이 "그릇 자체의 아름다움도 매혹의 영역이지만
그 담김의 상상이 결국 그릇의 매력"이라는 격려의(?) 글을 보내주었다.
'담김의 상상'이란 말이 좋아서 나는 며칠동안 틈틈히 마음 속으로 되새기며 다녔다.
담김만큼 담김이 만들어낼 관계에 대한 상상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 "당무유용"

노자(老子)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埏埴以爲器當其無有器之用(선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즉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의 쓰임이 생긴다"는 뜻이다. 노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무엇인가 담길 수 있는 '비어있음'의 가치가 모양과 색상, 무늬와 질감 등의 '유(有)'보다 본질적이거나
최소한 상호보완적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인의 말에 더해 보았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소설 『어린 왕자』 속 말도 있지 않던가.

조리실습에서 배운 기억으로 문어무침을 만들어 그릇에 담았다.
"그릇도 음식도 예쁘네." 하는 아내의 칭찬이 더해지면서 식탁 분위기가 한결 더 오붓해졌다. 
나는 그릇과 그릇의 '비어있음'의 의미는 뜻모를 '개똥철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음'을 채우는 실천적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아내에게 허풍스런 익살을 부리기도 했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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