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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22 - 김광규의「도다리를 먹으며」

by 장돌뱅이. 2019. 6. 30.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 해서 우리 대통령과 회의를 하고

우리의 다른 반쪽인 북한의 지도자를 만났다.

기자 회견장을 채운 화려한 말잔치의 정치적 이면과 속셈을 읽어낼 지식과 재주는 내게 없다.
다만 그의 무소불위의 힘과 행보가 이 땅에 오래 헤어진 사람을 만나게 하고,
실향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고, 높은 철조망을 걷어 비무장 지대를 남과 북 끝까지 넓히고
무기를 내려
핵폭탄도 핵우산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단초라도 남기고 갔으면 하는
'순진한' 바램을 가져볼 뿐이다.
어쨌거나 만남은 결별보다, 대화는 욕설보다, 비싼 평화가 싼 전쟁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가 수십 대 차량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서울 한 복판을 달리는 도로변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열심히 흔드는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듯한) 사람들과
그의 방한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이제는 80년 대의 추억같은) 사람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본다.
사안마다 갈수록 깊어지는 이념의 골이 서글프다.

관점을 놓치면 세상은 무의미해지겠지만 자신만의 시야에 갇히면 보이는 세상은 작아질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은 몸의 한 부분일 뿐이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던가.

아무래도 오늘 저녁 술자리엔 '좌광우도'로 눈이 치우친 광어와 도다리 반반의 모듬회를
안주로 하는 게 어울리겠다.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 붙었다고 웃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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