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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18 - 박규리의 「죽 한 사발」

by 장돌뱅이. 2019. 6. 24.




날씨가 더 없이 좋았던 주말.
오래간만에 후배와 부부 동반으로 만나 가벼운 산책을 했다.
후배 부부는 우리처럼 미국 샌디에고에서 산 경험이 있다. 
그래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을 "와! 꼭 샌디에고 날씨 같애." 라고 표현할 때
그 말 속에 들어있는 풍경과 감성과 추억을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

공감할 부분이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흥겹다.
산책 후 단골 북카페에 앉아 커피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서없고 부담도 없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신명나게 이어졌다.

만나는 내내 후배 부부는 변함없이 '꽁냥꽁냥'의 흐믓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아내와 둘이서 동이 틀 무렵까지 사촌형수가 보내준 마늘을 깐 탓이었다.
커튼을 여니 하늘이 어제처럼 눈부셨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무수한 반짝임으로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냉장고에 흔한 재료를 모아 멸치 육수를 내고 계란 파 등을 넣어 죽을 끓였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로 넉넉함과 신명에 다다를 수 있고,
흔한 재료로 빚은 죽 한 그릇의 따뜻함만으로도 식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건
마주 앉은 상대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언제쯤이면
다 풀어져
흔적도 없이 흐르고 흐르다가
그대 상처 깊은 그곳까지
온몸으로 스밀
죽, 한 사발 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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