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학창 시절 농활이나 모임에서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은 나눠먹는 것!"
*위 사진 : 김지하의 책, 『밥』 중에서
햇볕과 바람과 비에 노동을 머금은 밥은 하늘이고 영성(靈星)이다.
또한 밥은 똥이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생명 순환의 고리를 완결한다.
식사(食事)는 '식사(式事)'가 아니라 '하늘이 하늘을 먹는(以天食天)' 축제이며
공동체적인 나눔의 의미가 함께 한다.
물론 '혼밥'도 그 자체로 거룩한 행위임에는 틀립없지만 아무래도 좀 쓸쓸해 보인다.
시인 이재무는 「길 위의 식사」란 시에서 밥상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따뜻한 밥이 아닌 사료를 삼키 듯 허겁지겁 먹는 밥으로
각박해진 우리의 삶을 표현했다.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면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 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위 사진 : 임옥상의 그림 「밥상 1」
이재무의 또 다른 시 「멍석」에서는 우리가 읽어버린 식사의 원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난해도 나눔과 온기로 풍성했던.
몸은 무너졌으나 더운밥에 국물 뜨겁던
여름날 우리들의 저녁 식사여
냉수 사발에 발 담근 밤새 울음과
초저녁 별빛 몇 가닥도 건져올려
겉절이와 함께 밥숟갈에 걸치어주고
트림 한 번으로 낮 동안의 잘못
용서되던 반찬 없이 배불렀던 저녁 식사여
모깃불 연기 사이로
달 속 계수나무며 은하수 토끼 한 마리
모두 정겹던 아, 옛날이여 흑백영화여
늦은 밤 홀로 먹는 저녁밥에 목이 막힐 때
마음의 허청 속 거미줄에 사지 묶인 채
추억과 함께 돌돌 말려진 너의 몸 꺼내
서울 천지에 펼치고 싶다
우리들의 둥그런 식사를 위해
*위 사진 : 임옥상의 그림 「맛있게 먹겠습니다」(부분)
백무산은 「노동의 밥」을 이야기 했다.
4차산업혁명과 5G와 컨텐츠와 기획이 노동보다 시대를 앞서 가는 상품일 수는 있지만
노동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밥과 집과 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이다.
어떤 밥을 먹을 것인가. 밥이 분명하면 삶도 분명해진다.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
먹은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
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
쓰일 데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
살아있는 노동의 밥이
목숨보다 앞선 밥은 먹지 않으리
펄펄 살아오지 않는 밥도 먹지 않으리
생명이 없는 밥은 개나 주어라
밥을 분명히 보지 못하면
목숨도 분명히 보지 못한다
살아 있는 밥을 먹으리라
목숨이 분명하면 밥도 분명하리라
밥이 분명하면 목숨도 분명하리라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살아 있는 노동의 밥을
밥을 말할 때면 늘 떠오르는 신현득의 「옥중이」.
물신의 세태에 기죽지 않는 삶의 자세가 건강하고 당당하다.
그 바탕에 수북한 보리밥과 고추장의 식사가 있다.
쾅당!
울림이 크다.
옥중아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
보리밥 수북이 먹고
고추장 수북이 먹고
나무 한 짐
쾅당! 해오지
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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