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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36 - 안도현의「가을의 소원」

by 장돌뱅이. 2019. 9. 3.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시를 흉내내 새로운 계절을 위한 소망과 다짐을 붙여 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오래된 습관이라 해도 큰 성취를 갈구하지 않는 소소한 다짐만으로, 아니 다짐의 상상만으로도 한낮 지하철 안처럼 무료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잠시 유쾌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적막의 포로'가 되어 가끔씩 소란스러운 세상과 거리를 두어보자.
그러면 '술 한잔 사주지 않는 인생'에 너그러워질 수도 있으리라.

아무 이유 없이 아내와 자주, 오래, 많이 걷자.
같이 읽은 책에 대해 한가히 이야기하거나 팔 벌려 떨어지는 낙엽을 받아보기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엔 골목 어귀 찻집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들어도 좋으리라.

한 여름의 초록처럼 지나간 것들에 매달리지 말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또, 
올 가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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