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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37 - 조은의 「낙지」

by 장돌뱅이. 2019. 9. 4.

노노스쿨의 조리 시간에 결석하고 레시피만 받아 집에서 만들어 보았다.
조리 선생님의 설명과 함께 조리 과정을 직접 보고 난 후 음식을 만드는 것과
종이 레시피만 보고 만드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더 어렵다.
특히 나 같은 초짜배기는 더욱.




낙지는
『동의보감』에 소팔초어(小八梢魚)라 하고 성질이 순하고 맛이 달다고 했다.
참고로 문어는 대팔초어(大八梢魚)라고 한다.
여덟개의 다리가 작거나 크다는 것을 구분지어 이름 붙인 것 같다.  

또한 낙지의 속명은 '낙제(落蹄)'라고 했다.
속명이 '시험이나 검사에서 떨어짐'을 의미하는 낙제(第)와 발음이 같아 
수험생들에게 금기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산어보』에서는 낙지는 기운을 돋우는 식품으로 소개되어 있다.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금방 강한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낙지는 특별한 조리를 할 필요없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음식이다.

남도 지방에서는 세발낙지(가느다란 다리의 낙지) 다리를 훑으며 통째로 씹어먹는 방식이 전해오기도 한다.
보통의 식당에서는 
'탕탕이'로 잘라서 초장이나 기름장을 찍어먹는다.
낙지과의 연체동물을 악마의 자식으로 생각하여 먹지 않는 전통 서양인이 보면 질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잘린 낙지의 모습을 보고 태연히 시적 염감을 얻기도 한다.


몸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된다고
접시 속 낙지의 몸이
사방으로 기어나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
몸은 힘차다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
무궁무진하다는 듯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
몸뿐이라는 듯
                - 조은의 「낙지」-


낙지 자체의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익힌 음식으론 맑은 연포탕이 있다.
하지만 낙지는 다른 재료와도 잘 어울려 다양한 음식의 소재가 된다.

쇠고기와 결합하면 낙곰탕, 갈비와 만나면 갈낙탕, 인삼과 끓이면 낙삼탕이다.
남도 지방에서는 김치에도 넣는다고 한다.

서울엔 '무교동 낙지 골목'이 있었다. 1960년 대 중반부터 생겨난 낙지집들은
정확한 행정구역으론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했지만 사람들은 '무교동 낙지 골목'으로 불렀다.
1970년 대 재개발이 되면서 길 건너 청진동으로 옮겨가면서 이름도 그대로 따라갔다.
그러나 또 다시 개발로 피맛골이 해체되고 일대의 음식점들이 르메이에르라는 큼직한 건물 속으로
종합선물 세트처럼 들어가면서 '낙지 골목'도 사라지고 말았다.

콩나물에 낙지를 넣고 지독스럽게 매운 양념으로 볶아서 맑은 조개탕 국물과 나오던 무교동 낙지볶음.
매운 음식에 약한 나로서는 일행과 어울릴 때를 빼곤 자발적으로 간 적 없다.
음식이라 아니라 고문이라고 이곳을 안내한 일행들에게 투덜거린 적도 있지만
일대의 다른 노포들과 함께 흥청이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르메이에르라는 건물이 들어서고는 맛 이전에 분위기의 생겨함 때문에 잘 찾지 않게 되었다.
분위기가 바뀌고 이젠 일대에서 소비되는 낙지도 모두 중국산 냉동낙지라고 한다.

낙지는 또 표고버섯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낙지산적은 표고버섯, 고추와 파로 색상과 길이의 구색을 맞추어 만든다. 
위 사진은 레시피만 보고 독학으로(?) 만든 꽈리고추낙지산적이다.
고춧가루와 고추장, 그리고 설탕 등으로 만든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랐다.
양념이 맛이 있어 산적 전체에 발랐더니 원 재료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접시에 담아내는 것도 기술이고 감각인데 아직 나의 공부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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