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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인도네시아

2019.11. 발리1 - "I AM IN BALI."

by 장돌뱅이. 2019. 11. 10.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로 부풀어 오를 때는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라운지에 앉아 있을 때다.
모든 준비가 끝나 드디어 여행을 실행한게 된다는 사실에 작은 설렘과 성취감(?)이 더해진다.
그럴 때면 아내와 주먹을 세 번 가볍게 콩콩콩 맞부딪치곤 한다.
무엇인가에 흡족할 때 아내와 내가 나누는 의식이다.
이번엔 결혼기념일의 의미도 더해져 한번 더 주먹 인사를 했다.
"35년이라니! 함께 해줘서 고마워!"


출발이 저녁 비행기라 자정 가까워서야 발리에 도착했다.
" I AM IN BALI."
공항 표지판의 간단한 글을 '정말 그래!하는 안도와 자부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입국심사대 앞은 긴 대열이 꼬불꼬불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난전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허공에 가득했다.

숙소에서 마중 나온 운전수를 만나기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운전수는 중국인들이 매일 그렇게 들어온다며 공항에서 손님과 약속 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이젠 흔한 일이라고 했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발리 서쪽 해변 지역인 스미냑(SEMINYAK)에 잡았다. 공항에서 30분 가까이 걸렸다.
늦게 잠들었지만 평소 한국 시간에 맞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늦은 발리에서는 그만큼 더 이른 시간이다.
잠시 침대 속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쾌청한 하늘, 거센 파도 소리, 넓은 해변 풍경이 이곳에 오기까지 쌓인 찌뿌둥한 기운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발리에서는 꽃과 음식이 담긴 작고 네모난 바구니 - 짜낭 CANANG을 자주 보게 된다.
힌두신에게 올리는 공양이다. 사람들은 매일 사원이나 자신의 집 앞 그리고 일터에서 짜낭을 바친다..
곳곳에 쌓여 있어 지저분해보일 때도 있지만 짜낭은 발리인들의 종교적 일상을 담은 경건한 상징물이다.
길 위에 놓인 것은 밟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걸어야 한다.
 
아침 산책길에 짜낭을 바치는 사내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자 혼쾌히 승락해주었다.
발리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사진에 너그럽다.



'햇빛'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지닌다면 '햇볕'은 촉각을 환기하며 감각의 주체에게 가까이 있고
'햇살'에 이르면 통각이라고 할, 보다 종합적인 어떤 몸섞음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햇빛이 아직 대상화된 거리 속에 있다면 햇살은 피부와 혀에 감기고 마침내 무언가 부드러운 살점을
나의 내부로 밀어넣는 듯한 교합의 친미함 속에 있다. 계절로 치자면 봄과 가을의 그것은 햇볕에 가깝고
여름의 그것은 햇빛에 가깝고 늦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초봄에 이르는 그것은 햇살에 가까운 듯하다.
   -김선우의 글 중에서 -

발리에서, 특히 수영장 '죽돌이·죽순이'인 나와 아내의 입장에서 그것은 부챗살처럼 퍼지는 아침 '햇살'이었다가 
짱짱하게 피부를 파고드는 한낮의 '햇볕'이었다가 수평선 너머로 사위어가는 저녁 '햇빛'이 되는 것 같다.
햇빛이건 햇볕이건 햇살이건 다 좋으니 발리에 머무는 기간만큼은 비구름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11월 발리는 우기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이곳저곳 풍경을 감상하며 다니는 일정이라면 비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낙지처럼 누워 휴식을 즐기려면 비는 아무래도 곤란한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보내다가 숙소 인근 거리로 나섰다.
환전도 하고 식사도 하고 '잘란잘란(JALAN JALAN:산책)을 할 목적이었다.
발리의 도로는 걷기에 불편했다.

등에 꽂히는 강렬한 햇볕이야 어차피 열대 지방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좁은 도로에 뒤엉켜 매연과 소음을
내뿜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행렬은 참기 힘들었다. 인도(人道)는 자주 끊기는 데다가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내놓은 물건과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 그리고 행인들로
옹색하게 쫄아들어 있었다.




더위 속에 미련스럽게 한 시간 정도를 산책하고 나니 몸이 후줄근해졌다. 
출출함까지 더해져 다리쉼을 하며 마신 향긋한 커피는 몸 속으로 깊숙히 스며들었다.

앞으로는 발리에서는 해변길 아니면 걷지 말고 가급적 차를 타자고 아내와 뒤늦게 의견을 모았다.



발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일몰을 보기 위해 서쪽 바다를 찾는다.
수평선으로 기울어지며 해가 남기는 황홀한 풍경은 모여드는 많은 사람들로 축제가 된다.
아내와 나도 해변 입구의 계단에 앉아 잔광이 어둠과 섞여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잘란 까유아야(JALAN KAYU AYA)에 있는 식당 "루머스(RUMOURS)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했다.
적당히 질긴 육질과 구수한 맛의 스테이크였다.
어두운 조명과 펑키한 음악으로 좀 산만한 분위기만 아니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발리 여행이 주는 판타지를 깨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I AM IN BALI'의 첫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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