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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51 - 조병화의「낙엽끼리 모여 산다」

by 장돌뱅이. 2019. 11. 22.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조병화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비에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졌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살고 싶다는 말.
"사막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던 어린왕자의 말과 비슷하다.
예수님은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길에 누운 낙엽을 보며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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