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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54 - 돈황변문 중 「장부 백세편」

by 장돌뱅이. 2019. 12. 19.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권을 읽었다.

중국의 서북쪽 섬서성 서안에서 감숙성 돈황에 이르는 지역을 답사한 이야기다.
유홍준의 넓고 깊은 지식과 빼어난 글 솜씨 덕분에 읽는 내내 돈황에 빠져 들었다.
책상에서 하는 돈황 여행이라 할까?
언젠가 나도 그 자리에 서있을 날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한달 정도 일정을 잡아 한 번 다녀오라는 아내의 응원도 있으니. 


책에 "돈황변문(敦煌變文)" 중 「장부 백세편(丈夫百嵗篇)」이 있어 옮겨 본다.
변문은 "당나라 때 민간의 강창(講唱) 문학으로 정형에서 벗어난 신흥문체"이며, 
"언어가 통속적이고 구어에 가깝고 운문과 산문이 결합되어 훗날 엄격한 율격의 당시가
송나라 때 사(詞)로 넘어가는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육십을 넘으니 글 중에도 '예순 살' 대목에 특별히 눈이 갔다.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보지만, 어느 시절에나 잠시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
"쓸데없는 근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나 저절로 슬퍼지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청춘은 육십부터이니 백세시대이니 하며 60+세대를 응원하는 말들이 많지만 
내겐 그런 말들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특별'은커녕 조금은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게 된다.

백세시대는 인류의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하려고 해도 눈물이 먼저흐르고' '귓가에 천둥이 쳐도 듣지 못하는' 몸으로  물리적 나이만 연장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무리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려 하기보다는 나잇값이나 제대로 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자식이 출가하여 일가를 이루고 생업전선에서도 물러났으니 조용히 자족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순리이리라.
지나온 날들을 지우며 살 수는 없을 지라도 병과 늙음이 띠풀처럼 자라날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에
인생의 허무를 가끔씩 슬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겠다.
조금씩은 슬퍼해야 아름답게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장부 백세편(丈夫百嵗篇)」에 서린 비애도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열 살, 향기로운 바람에 연꽃이 피어난다. 형제들은 모두 옥 같아 부모님들 자랑하네.
새벽녘에 친구들과 공차러 나가서, 황혼이 되도록 돌아올 생각 않네

 스무살, 옥 같은 얼굴, 말 타고 집을 나서 동서로 치달렸지. 종일토록 말을 탄 채로
의식(衣食)을 걱정하지 않는다. 비단옷은 발밑의 진흙처럼 여긴다오.
 서른 살, 당당하게 육예(六藝)를 완벽하게 익히고, 친한 벗이 아니어도 모두 가까이
지낸다오. 보랏빛 등나무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취하여 생황 불며 미소년을 노래하네.

 마흔 살, 둘러보니 인생의 내리막길, 근래의 친구들 반이나 사라졌네. 이내 근심 풀어줄
사람 없으니, 봄빛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겠네

 쉰살, 억지로 애써서 몇 가지 일을 했지만, 이내 몸 앞길이야 어찌 생각할 수 있으랴.
젊었던 얼굴은 어느덧 근심 속에 변했고, 거울 속 백발을  어찌 감당할꼬.

 예순 살, 그래도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보지만, 어느 시절에나 잠시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
아들 손자 점점 분부를 감당할 수 있고, 쓸데없는 근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나 저절로 슬퍼지네.

 일흔 살, 삼경에도 잠은 오지 않고, 쓸데없는 일 아직도 포기 못하고 근심하네. 뜻밖에도 늙어감이
웃음거리만 될 뿐, 병과 늙음이 계속 이어져 띠풀이 자라나듯.

 여든 살, 누가 이내 몸 걱정해주랴. 옛것은 잊어버리고 앞날은 생각지 못하고 정신은 가물가물.
문 앞의 저승사자 죽을 때가 된 귀신 아니냐 묻고, 꿈에선 옛 친구를 만나누나.

 아흔 살, 남은 여생 실로 가련하구나. 말을 하려 해도 눈물이 먼저 흐르고, 이내 혼백은 지금 어디
있는고, 귓가에 천둥이 쳐도듣지를 못하네.

 백 살, 근원으로 돌아가려해도 할 수가 없고, 저무는 바람이 눈을 쓸어내니 바위와 소나무가 슬퍼하네.
인생은 허무한 것, 허튼 계획 세우지 마라, 만고에 남은 것은 흙 한더미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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