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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55 - 신동엽의 「그 사람에게」

by 장돌뱅이. 2020. 1. 1.



영화 "스틸 라이프 STILL LIFE" 의 주인공 존 메이는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공무원이다.
그의 업무는 무연고로 외로이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이다.
그는 이 일을 22년 동안 성실히 수행해 왔다.
홀로 죽은 사람이 발견될 때마다 존은 망자가 남긴 작은 목걸이, 립스틱, 사진 등의 작은 유품을 꼼꼼히 챙긴다.
그리고 유품의 내력을 따라가며 망자가 지나온 흔적들을 모아 온전한 삶을 모자이크한다. 
그는 또 최선을 다해 고인의 지인들을 수소문 하고 장례식 참석을 권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텅 빈 성당에 존만 홀로 앉아 고인의 마지막을 지키게 된다.
시신이 화장 된 뒤 유골보존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도 존은 우직하게 지인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어느 날 존에게 해고 통보가 전해진다.

하찮은 무연고 사망자의 처리에 시간과 예산을 너무 많이 소모한다는 비효율성이 주된 이유였다.
존은 해고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처리를 하고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3일간의 시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자비를 털어 마지막 무연고 죽음의 '연고'를 찾아 나선다.

영화를 만든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 Uberto Pasolini 감독은 
"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죽은 이들'이라는 보통명사를 '죽음'이라는 추상명사로 바꾸어
삶의 품격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본다.


2019년에 겨레붙이 S와 어릴 적 친구 H가 세상을 떠났다.
언제 어떻게 맞닥뜨릴지 모르는 느닷없는 죽음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의 한 해였다.
'Menento mori.'
삶에 가장 중요한 정언명령은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라 했던가?

S와 H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삶은 더없이 명료해졌다.
어쩌면 삶이라는 시간의 명료함이 죽음이 말하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양수진의 글)
잘 죽는다는 건 결국 잘 사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을, 바로 지금을 잘 사는 것이다.
오늘은 언제든 멈출 수 있으므로.
앞날은 누구에게도 보장되지 않으므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먼 곳으로 떠난 그들에게 평화로운 안식이 주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아내가 지닌 예리한 아픔도 조금은 무뎌지기를.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 신동엽의 시, 「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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