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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코로나의 '선물'

by 장돌뱅이. 2021. 1. 9.

 

 

 

 

 


새해 들어 처음으로 한강 변을 걸었다.

추워진 날씨에 움추려 있다가 까짓거 하는 마음으로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보통 때와는 달리 강변 길은 텅 비어 있었다.
눈 때문인지 자전거와 전동휠 진입을 통제하여서 적막하기까지 했다.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했다. 휴대전화의 앱은 13,151걸음에 9.21km를 걸었다고 알려주었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인적도 끊였는데)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강에 배 띄우고)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 오는 찬 강에서 홀로 낚시 하네)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

코로나는 분명 전대미문의 고통스런 상황을 가져다 주었지만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했다.
지난 가을 환절기마다 속을 썩이던 기관지 알러지가 부드럽게 지나갔다. 
아마 외출할 때나 밖에서 운동할 때 항상 마스크를 착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2020년은 코로나에 밀려 생활이 손자친구와 놀기, 아내와 산책과 영화 보기, 음식 만들기,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로 단순화 된 일년이기도 했다. 
계획했던 유럽 여행은 무산되고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뜸해졌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 이외에는 대외 활동이 전무해진 것이다.

자연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가 특별히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매여 있던 잡다한 일에서 자유로워지니 오히려 찬찬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독서양도 많아지고 잡문이지만 블로그에 글도 이전 보다 자주 올릴 수 있었다. 
코로나는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내가 백수 체질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다.


위 유종원의 시 각 구절의 첫 글자만 모으면 '
獨(천만고독)'이 된다.
거기에 주목하면 새 한 마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춥고 적막한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드리운, 
'천만고독' 속 노인의 자세가 꼿꼿하고 당당해 보인다.


외로움은 고독과 다르다.
외로움이 안팎으로 고립된 감정이라면 고독은 자신을 향한 열린 감정이다. 
외로움이 차가운 침묵이라면 고독은 따뜻한 대화이다.
코로나를 예찬할 생각은 없지만 기왕지사 그놈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시절이니
번잡한 일상과 결별하고 잠시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독' 속에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위대한 일은 모두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일어난다.
옛날부터 새로운 가치의 창안자들은 시장과 명성을 떠난 곳에서 살아왔다.
달아나라,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 사나운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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