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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58 - 박용래의「겨울밤」

by 장돌뱅이. 2020. 1. 24.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박용래의 「겨울밤」-


고향
.
머지 않아 사라지거나, 존재한다고 해도 고향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근원적 모태로서의 포근함과
어느 날 가슴을 찌르며 되
살아나는 추억과 회귀를 재촉하는 정서는 사라지고,
다만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만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난 제게 고향의 의미가 그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선산이나 친척들은 물론, 어릴 적 친구들도 모두 그곳을 떠나버려
명절이라고 해서 굳이 찾아갈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놀던 개천은 복개되어 차 다니는 대로가 되었고,
산은 허리께까지 아파트에게 자리를 내주어 옛일을 돌아볼 근거마저 사라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출생지라는 사실을 빼곤 서울의 여느 낯선 동네와 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고향의 의미가 축소되면 명절마다 뉴스를 장식하는 귀향이란 단어도 어쩌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에게만 해당되는 말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자주 듣고 사용하던 - 시렁, 툇마루, 추녀, 싸리나무 울타리, 외양간, 고무신, 낙숫물,
싸락눈 들이치는 소리 등등 - 단어와 표현이 지금의 일상에서는 낯설게 변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제게 명절은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자마자 돌아와 출가한 딸아이네 가족을 맞는 날입니다.
그리고 네 살배기 손자친구와 허리가 시큰하도록 노는 날입니다.
물론 그 즐거움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애석함 따위(?)를 덮고도 남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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