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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160 - P.엘뤼아르의「그리고 미소를」

by 장돌뱅이. 2020. 1. 31.


위 그림은 스위스 바젤 출신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öcklin)이 1898년에 그렸다.
한눈에 보기에 뭔가 공포스럽고 괴기스럽다.
제목이 「페스트」라는 걸 알고 나면 분위기가 수긍이 간다.
열네 자식 중 여덟 명을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으로 잃은 화가의 애잔한 가족사를 알고나면 더욱 그렇다.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스러질 뿐인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통곡이 읽혀진다.

중국 우한 발 신종 바이러스가 기세등등하다.
수천 명이 감염되고 2백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발생지인 우한은 폐쇄되고 나라마다 자국민을 탈출 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부산하다.
급기야 바이러스는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까지 옮겨와 어제 저녁엔 2차감염 환자까지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뵈클린의 그림에 보이는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하는 산책이나 피트니스센터에서의 운동을 위한 간단한 외출도 조심스럽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당연한' 모습이 살풍경스럽게 다가온다.
지하철처럼 갇힌 공간에서 누군가의 작은 기침소리에도 무심한 듯 신경을 곤두세우는 예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손자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카페에서 따끈한 음료와 달달한 과자를 나누는 즐거움도 당분간은 보류해야 할 것 같다.
바이러스는 아내와 내가 여행을 계획하는 먼 나라까지 앞질러 당도해서 진을 지고 있어 일정을 잡기가 어렵다.

그림과 같은 제목의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페스트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를 덮친다. .    
'죽음은 평온했던 날의 빨래처럼 여기저기 널리고'  도시는 폐쇄된다.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페스트라는 공포에 다양하게 반응한다.
어떤 이들은 절망하거나 도피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상황에 비추어 페스트를 내심 반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라고 
고백하면서도 페스트에 맞서서 싸운다.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리고 그 성실성은 '의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마침내 페스트는 물러가고 그 재앙의 시기에 사람들은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의지와 긴장'을 늦출 때 누구나 내면에 담고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의미의 페스트가 창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

공포의 사지에서 탈출하듯 돌아오는 우리 국민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성실한 의지'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불행한 시기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찬양할 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으면 더 좋겠다.
나는 인류가 바이러스로 멸망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이러스 아닌가.   
인간은 불완전한 그놈들을 늘 적절하게 제압해 오지 않았던가.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 켜진 창이 있고
언제나 꿈은 깨어나며
욕망은 충족되고 굶주림은 채워진다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P.엘뤼아르의 시, 「그리고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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