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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박후기의「꽃 택배」

by 장돌뱅이. 2020. 4. 29.


*손자친구가 만든 봄꽃


사월을 밝히던 아파트 화단의 벚꽃이 '태초의 발송지로 반송' 되고 이젠 그 자리를 초록의 잎이 채우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사이를 걷는 아련한 기억도 없이 마스크에 갇혀 보내버린 봄이었다. 
코로나가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불러왔다는 역설이 우리가 사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지만 
이제 그만 코로나도 벚꽃을 따라 '반송'되었으면 한다. 
지혜로운 잠언도 결국 우리가 평범한 일상을 유보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고민할 때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택배회사 울타리

벚꽃 피고 진다
어떤 꽃잎 피어날 때
어떤 꽃잎 지고 있다
늙은 왕벚나무가 
꽃들의 물류창고 같다
사랑은 언제나 착불로 온다
꽃들은 갑자기
왕벚나무를 찾아와
빈손을 벌리고,
집 없는 나는 꽃 피는
당신을 만나야 한다
꽃잎은 끊임없이
억겁의 물류창고를 빠져나가고,
사월의 허공이
태초의 발송지로
반송되는 꽃잎들로 인해
부산하다

-박후기의 시, 「꽃 택배」-



'태초'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조심스런 바램.
우선 손자 친구의 얼굴에서 두터운 마스크를 벗겨주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착불' 비용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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