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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붕세권

by 장돌뱅이. 2021. 1. 13.


'붕세권'은 붕어빵 파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을 의미한다.
역세권, 팍세권, 숲세권, 학세권 하는 말들은 우리 사회가 부동산(특히 아파트) 가격 프레임에 지배당하면서 
익숙해진 말들이지만, 호세권(호떡)과 붕세권은  길거리 음식에도 레트로 문화가 유행하면서 생겨난 신조어라고 한다. 
전국의 풀빵집 위치를 알려주는 앱까지 있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곳도 붕세권이라 아내와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사 먹을 수 있었다.
따끈한 붕어빵을 베어 물면 달콤한 팥소가 입안에 녹아들면서 오붓했던 어린 날의 감성이 살아나곤 했다.
그런데 지하철역 근처 건널목에 있던 붕어빵 노점상이 언제부터인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동네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재료비의 인상과 코로나의 여파로 전체적으로 붕어빵 가게가 하나둘 사라지는 추세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붕어빵 노점상 창업 문의가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초기 창업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코로나로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이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붕어빵이 사라지는 이유와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가 코로나로 같다는 사실이 묘하다.
예측하기 힘든 
생존 상황에 우리가 갇힌 것이다.

작년 3월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는 SNS에 올린 동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
코로나19의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당신이 얼마나 부유하고, 유명하고, 재미있고, 똑똑한지, 어디에 살고,
나이가 얼마인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대단한 '이퀄라이저(평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코로나는 끔찍하며 동시에 위대하다. 
코로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끔찍하고, 또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경이롭다.
(That's the thing about Covid-19, It doesn't care about how rich you are, how famous you are, 
how funny you are, how smart you are, where you live, how old you are, what amazing stories you can tell. 
It's the great equalizer and what's terrible about it is what's great about it. 
what's terrible about it is that it's made us all equal in many ways -- and what's wonderful about it is
 that it's made us all equal in many ways.)


사람들은 마돈나가 욕실에 꽃잎을 띄워놓고 찍은 이
 영상에 많은  비판의 댓글을 달았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우리가 같은 병으로 죽을 수는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비극에 대하여 아무것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말아달라."
(
Sorry my queen, love u so much, but we're not equal. We can die from the same diseases,
but the poor will suffer the most. Do not romanticise nothing of this tragedy.)

코로나 일 년이 지나면서 경제 ·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한다.
자영업자는 외딴 골목으로 내몰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흔들리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사교육과 공교육의 격차도 커졌다.
코비드는 'The Great Equalizer'가 아니다.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A Bloody Discriminator'일 뿐이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처럼 바이러스도 인간 사회 속에 오면 '계급적'이 된다.

내가 사는 곳이 다시 붕세권을 되었으면 하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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