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온천의 도시
팜스프링스를 간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로
골프와 온천욕을 추천을 해주었다. 팜스프링스 시내에만 골프장이
70여개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골프라는 게 겨우 100타를, 그것도 가끔씩 넘어보는 허접한 실력인지라
여행길에 골프채까지 싣고 갈만큼의 열정이 생겨나지 않았고,
온천은 느긋하지 못한 성격 탓에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앉으면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 밖에 안 나는 터라 나로서는 어디서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였다.
한국에서 가끔씩 찜질방을 가는 아내는 “온천은 무슨...” 이라며
“다음에 다시 갈 때 생각보자” 라는 말로 그런 나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볼거리를 따라가는 여행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빈약해서 그렇지 자연적인 볼거리는 미국을 따라잡을 나라가 많지 않아 보인다.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주재기간동안, 그것도 작년 연말 그랜드캐년 일대를 돌아본 것을
제외하곤 기껏 샌디에고 주변을 돌아본 것이 아내와 나의 미국 여행 경력의 전부이지만
여행 중 우리는 종종 “미국! 그래 너 크다!” 혹은 “잘났다 정말!” 하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다.
그것은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미국 국토의 거대함과 자연의 현란함과 웅장함에
보내는 탄복과 부러움의 표현이었다. 이제까지의 여행지와 다른, 어떤 말이나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종종 생기는 것 같다.
팜스프링스의 케이블카(AERIAL TRAMWAY)
숙소인 까사코디(CASA CODY)의 아침은 그야말로 간단했다.
작은 테이블에 빵과 토스터기, 그리고 음료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참신한 공기의 감촉을 느끼며 수영장 옆에서 먹는 아침이 나쁘지 않았다.
여행 중이라는 가산점수가 붙어서 주어진 여건의 평가에 후해진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대부분에서 느끼는 강렬한 공기와 햇살은 그 어느 곳의 분위기도
밝게 바꾸어 줄만큼 남다른 것이었다. 더군다나 아침의 맑은 기운이 가득한 수영장
옆이라면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해도 여느 곳에서와는 다른 흡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팜스프링스에서의 첫 일정은 (골프와 온천욕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말해준) 케이블카였다.
까사코디의 뒤쪽으로 우람하게 솟은 샌하신토산(MT. SAN JASINTO)의 능선을 트램웨이로
오르는 일은 팜스프링스 여행의 필수 코스라고 했다.
숙소에서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팜스프링스를 가로지르는 대로(PALM CANYON DR.)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트램웨이 로드(TRAMWAY ROAD)로 바꾸어 산을 향해 5분 정도를 오르면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도로 초입에서 보는 산정상부는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팜스프링스에서는 3월까지 산에서 눈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반팔의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산 위의 눈.
그 어울리지 않는 풍경에서 보듯 캘리포니아에서 헷갈리는 일 중의 하나가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이곳에도 한국의 겨울철에 해당하는 시기에 기온이 낮아지지만 바다에서
여전히 수영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샌디에고에서는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두터운 잠바를 여미며 종종 걸음을 치는 것이
이곳의 날씨다. 낮과 밤의 기온차에 개인적인 적응력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이주이삿짐을 꾸리며 “옷은 뭘 가지고 가야지?” 하며 묻는 아내에게
긴팔은 거의 필요없다고 알려주었다가 샌디에고에 도착하는 즉시 옷부터 사러가야 했던
적이 있다. 아내는 나에 비해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케이블카는 잠깐 사이에 고도 2600미터의 산 능선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승강장의 난간에서는 팜스프링스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가꾼 인공의 오아시스 도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 무리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건너온 이래 짧은 기간 동안
미국이 이룩한 유례없는 번영이 그렇듯이.
비록 근래에 들어 그 의미가 바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승강장의 뒤쪽으로 돌아가니 딴 세상인 듯 하얀 눈이 깔려 있었다.
예상했던 만큼의 바람도 없어 조용하기만 한 숲속을 우리는 소리 나도록 눈을 밟으며 걸었다.
불과 일년 전까지만해도 우리가 일년 후 이 먼 미국땅에서 눈을 밟을 거란
예상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삶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어쩌면 날마다
새로운 순간들을 마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인 것도 같다.
젊은 날부터 그 낯설음에 그나마 크게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나의 굳은 심지 때문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베풀어준 관심 때문이고
무엇보다 아내가 함께 해준 덕분이다.
바위 위의 눈을 뭉쳐 아내에게 던지는 식의 실없는 장난이나
사는 일이 힘들어질 때마다 쉽게 내뱉곤 했던 나의 철부지 투정을
아내는 늘 나의 일부로 너그럽게 인정하여 주었다.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번 할까?”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걷다가 예의 그 장난기로 짓궂게 물었다.
“뭐야 이대근이처럼 징그럽게! 그것도 벌건 대낮에.” 아내는 눈을 흘겼다.
“뭐 어때? 이쪽 애들은 가게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다가도 하던데.
미국에 왔으니 우리도 아메리칸 스타일로 사는 거지.”
“아메리칸 스타일? 장돌뱅이가? ㅎㅎㅎㅎㅎㅎ”
아내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눈 위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을 따라 숲속으로 오래 스며들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인디안 캐년 드라이브(INDIAN CANYON DR., 760-416-7788)에
있는 식당 와사비(WASABI)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의 이름과 분위기가 일본식이라
당연히 주인도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서로 힘들여 ‘제2외국어’로 소통을 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 우리는 사장 내외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엘에이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와사비에서 우리는 스시롤과 우동을 시켰다.
깔끔하고 준수한 맛이었다.
JOSHUA TREE NATIONAL PARK
점심 식사 후 죠수아트리 국립공원을 다녀왔다.
죠수아트리는 창세기에 죠수아(여호수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기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전래동화 속에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를 여러 개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선인장과 야자수를 합쳐놓은 모습이라고 했다.
야자수만큼 키가 크지만 줄기와 가지는 선인장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원 입장료는 그 기준 단위가 특이하다.
한국에서처럼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기준으로 한다.
차안에 몇 명이 타고 있건 차 한 대의 입장료는 동일해지는 것이다.
마치 미국 사회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하는 것처럼 같았다.
870 스퀘어 마일에 달하는 방대한 크기의 죠슈아트리공원은 남쪽, 서쪽 그리고 북쪽의
3개의 출입구가 있다. 우리는 팜스프링스에서 제일 가까운 서쪽 출입구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곳 VISTOR CENTER 직원의 충고를 받아들여 더 차를 몰아 북쪽 입구를 통해
입장했다. 휴일에 차가 밀려 서쪽 입구가 다소 혼잡하니 북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오면
거리는 마찬가지나 시간은 절약될 거라는 말이었다.
요즈음 들어서는 각 지자체에 근무하는 우리나라의 공무원도 매우 친절해졌다.
아내와의 국내여행을 할 적에 사전조사차 전화를 걸어본 모든 지역의 문화관광담당
직원들은 사근사근하기가 그지없었다.
미국에 와서 만나본 각종 공원 안내소의 직원들도 (대개 나이가 들었다) 그랬다.
그들은 매우 친절할뿐더러 열정적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스며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의 설명은 낯선 방문객에게 매우 효율적이었다.
센터에서 나누어준 안내 팜플렛에는 방문 시간에 따라 공원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간단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첫째, 서너 시간의 일정으로 돌아볼 경우 공원길 (PARK BOULEVARD)을 따라 가며 길에서
가까운 곳에 흩어져 있는 볼거리를 본다. 짧은 하이킹코스를 하나 택해 직접 걸어본다.
가장 유명한 뷰포인트인 KEYS VIEW에서 조망을 할 수도 있다.
맑은 날은 멕시코지역까지 건너다 볼 수 있다.
둘째, 온전한 하루의 일정으로 왔다면 여러 개의 짧은 트레일이나 한두 개의 긴 트레일을
걸어볼 수도 있고, 산악자전거타기나 암벽타기(ROCK - CLIMBING)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죠슈아트리공원은 암벽타기에 적합한 장소로 세계적으로도 알려져있다.
셋째, 시간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루 이상의 일정을 갖고
있다면 이상의 모든 일에 공원 내 아홉 곳의 캠핑 장소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위 사진 :죠수아트리 공원에서 가장 높은 1581미터의 KEYS VIEW 포인트에서의 조망.
오전에 올랐던 샌하신토 산 위올 구름이 내리 덮히고 있다.
반나절의 시간만 가진 우리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되었다.
공원대로를 따라 차를 운전하며 곳곳에서 차를 세우고 길에서 가까운 곳을 돌아보았다.
죠슈아트리공원에서는 그랜드캐년과 같은 장엄함이나 드라마틱한 풍경을 볼 수는 없다.
내게 가볼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 사람들도 그런 이유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죠슈아트리공원은 아내와 내겐 충분히 좋은 곳이었다.
비록 남쪽 출입구 부근에서부터 피기 시작했다는 사막의 화려한 꽃을 보지 못하고 온 것은
아쉬웠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죠슈아트리가 줄지어 서있는 이국적인 풍경의 사막은
그 모습 그대로 매혹적이었다.
도로에서 보면 사막은 그저 황폐하고 단조롭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록 우리는 여러 동식물과 기묘한 지형의 다양하고 매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VIEWED FROM THE ROAD THE DESERT MAY APPEAR BLEAK AND DRAB. CLOSE
EXAMINATION REVEALS A FASCINATING VARIETY OF PLANTS AND ANIMALS AND
SURREAL GEOLOGIC FEATURE.)
공원 안내서에 나온 말이다. 어디 사막뿐인가.
진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늘 어떤 것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
필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뿐이다.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사막의 은밀한 내면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샘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식당 챺하우스(CHOP HOUSE)
죠슈아트리공원을 나와 팜스프링스로 돌아오는 길에 카지노에 들렸다.
아내를 설득하여 거금 20불씩을 투자했으나 카지노에서 본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빨리 나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팜 캐년드라이브(PALM CANYON DR.)에 있는식당 챂하우스 (760-320-4500)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챂하우스는 분위기 있는 고급식당이었다. 맛이 좋은 만큼 당연히 가격도
비쌌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횡재를 하여 남의 돈으로 먹었다면 더욱(?) 맛이 있었을 거라며
아내와 웃는 시간은 따뜻했다.
*위 사진 : 팜스프링스의 밤거리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팜스프링스 거리는 주말 저녁답게 조금은 흥청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박스러울 정도로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아내와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에 수영장 옆 의자에 길게 누웠다.
밤하늘엔 작은 별들이 초롱하게 떠있었다.
나는 그 옛날의 젊은 시인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의 별들을 아무 걱정도 없이 다 헤일 듯 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시인 흉내를 그만두고
나는 낮은 목소리로 옛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면 빼놓지 않는 나의 버릇이다.
이럴 때 아내는 ‘고음불가’의 나의 노래 실력을 개의치 않는다.
검은 빛 바다 위를 밤배 저어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봐 한없이 흘러가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저어 비출 때면
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들텐가
음 -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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