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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태국식 매콤 돼지고기 덮밥"을 먹으며

by 장돌뱅이. 2021. 3. 29.

태국은 우리 가족이 매우 좋아하는 여행지다.
딸아이가 어릴 적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세 식구가 함께 해마다 한 번 이상은 방문했던 것 같다.
설탕 같은 모래 해변과 에머럴드빛 투명한 바다, 깊은 산과 마을 가까이 흐르며 사람들을 모으는 강,
화려한 불교 사원과 옛 왕조의 유적지까지 태국은 다양한 볼거리와 놀
거리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맛있고 다채로운 음식들이 더해져 매력의 화수분 같은 곳이었다.

지난 여행 사진들 - 푸껫과 치앙마이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서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오래 내면화된 것들이라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때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저런 합리화를 해가며 그것을 하고야 만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아내와 내겐 여행, 특히 태국여행이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복용'해야' 하는 경험이다.
그런데 작년엔 코로나로 태국은커녕 어떤 여행도 가지 못했다. 

일 년 동안 출입국 심사대를 한 번도 통과하지 않은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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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태국음식 모듬

어떤 곳을 오직 음식만을 목적으로 여행을 해야 한다면 아내와 나에겐 단연 태국이다.
막힌 태국 여행의 갈증을 음식으로 달래 보는 이유다.
집 근처 태국 음식점에서 '팟타이'나 '얌운센'을 포장해 올 때도 있고, 마트에서 공심채를 사다가 된장, 물과 액젓을 넣고 볶아 '팟팍붕파이댕'을 만들거나 여행할 때 사 온 인스턴트 소스로 똠양꿍을 끓여 먹을 때도 있다.

 오늘 영상으로 배운 요리 강좌의 메뉴는  "태국식 매콤 돼지고기 덮밥"이었다.
'태국식'이라는 수식어만으로 우선 반가웠다.
돼지고기와 양파, 청양고추, 깻잎 등를 볶고  멸치 액젓과 간장으로 간을 하여 만들었다.
레시피에는 없었지만 강사의 추천에 따라 마른 새우와 미나리도 넣었다.
이것을 따끈한 밥 위에 달걀 프라이와 함께 얹어 비벼 먹었다.

 "볶은 돼지고기 덮밥"의 태국 이름은 "팟까파오 무 랏카오"다.
"팟" 은 '볶다', "까파오"는 '바질(BASIL)',  "무"는 '돼지고기', "랏카오"는 '밥 위에'란 뜻이다.
돼지고기 대신에 오징어(바묵), 새우(꿍), 닭고기(까이)를 넣어 만들기도 한다.
태국에서는 볶음 요리에 "까파오"를 많이 쓴다. 볶으면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강한 향이 퍼지는
자극적인 '까파오'의 냄새를 맡으면 태국에 온 것을 실감하곤 했다.

까파오(BASIL)

깻잎으로 '까파오'를, 멸치 액젓으로 태국 액젓인 '남쁠라'를 대신한 이번 요리는 '본토'의 맛과는 약간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잠시 태국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어떤 음식이든 원형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원형'이란 건 실재론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먹는 사람의 입맛과 정서에 부합하는 한 세상의  모든 음식은 독창적이며 독립적이다.
'짝퉁'이 아니다. 표준화·규격화된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인스턴트화 된 공업 제품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음식으로 여행에 대한 갈증을 달랜다고 해도, 여행은 여행 아니면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 여행은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체를 넘어 화학적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그곳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 생소한 언어와 문자, 낯선 사람들과 음식, 일상에 얽매이지 않고 풀어진 시간,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기, 등등.  

아! 여행 가고 싶다.
북적이는 방콕의 어느 '쏘이'(골목길) 노천식당에 앉아  '솜땀'(파파야 샐러드)과 '까이텃'(닭튀김)에 '비야씽'(싱하맥주)을 마시고 싶다. 아니면 달달하고 시원한 '카페 옌'(아이스커피)이나 '땡모빤'(수박쥬스)을 앞에 두고 요란스레 소나기가 지나가는 강변이나  불볕 쏟아지는 푸껫 비치의 카페에 앉아 있고 싶다.

코로나야, 이젠 좀 물러가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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