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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중복, 삼계탕

by 장돌뱅이. 2021. 7. 22.

비도 많이 내리지 않은 (서울 기준) 짧은 장마가 끝나자 더위가 기승이다.
아침부터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중에 폭염 주의 문자가 쇄도한다. 바다 주제의 음악과 함께,  바다 여행의 추억이
스민 유리컵에 냉커피를 담아 마시며 상상과 감각으로 더위에서 벗어나 보려 하지만 어림없다.
못 가는 여행 비용으로 에어컨이나 틀자는 심산으로 아침부터 에어컨 스위치를 최고로 올리게 될 뿐이다.



중복이라  복달임을 생각했지만 더운 날씨에 지쳐 식욕이 크게 일지 않았다.
게다가 더 먹는 게 아니라 덜 먹는 게  건강 수칙인 요즘 시대에 복날이라 해서 새삼스레
무슨 보양식(保養食 혹은 補陽食)을 찾을 이유도 없긴 했다.
그래도 전통 풍속을 즐겨본다는 생각으로 삼계탕을 만들었다.
음식은 먹는 재미도 있지만 그에 앞서 만드는 재미도 있다.

조선시대에 삼계탕은 없었고 백숙(白熟)은 있었다고 한다.
닭만이 아니라 아무런 양념 없이 수증기로 쪄낸 모든 고기 음식을 백숙이라 불렀다.
닭백숙은 연계증(軟鷄蒸) 혹은 연계백숙( 軟鷄, 영계백숙이 아님)이나 수증계(水蒸鷄)라고도 했다.
사실 삼계탕은 복날에 어울릴 만큼 역사가 오랜 전통 음식이 아니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이 국가가 통제하는 귀한 식약 재료였으니 이해가 간다.

닭은 구육(狗肉, 개고기)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주요 육식 재료였다.
전통 사회에서 소는 농경의 주요 도구로 도축이 엄격히 금지되었고,
말은 통신과 교통의 주요 수단으로 고기의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돼지는 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4kg의 사료가 필요한 동물로 인간과 먹이를 두고 다투어야 하는 경쟁자였다.
게다가 소와 양처럼 노동력이나 젖을 제공하는 이점도 없었다.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한 배경에는 더럽고 부정하다는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이와 같은 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동을 해야 하는 유목민이 돼지를 기르지 않는 이유도 같다.

결국 만만한 것은 닭과 개뿐이었다.
개고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등 대부분의 동아시아에서 먹었다.
타히티인과 하와이인, 그리고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도 개고기를 상식했다고 한다.
콜럼버스 이전의 중부 캘리포니아에 살던 인디언들이나 멕시코인들도 개고기를 먹었다.

특히 중국은 제사에 사용할 정도로 개고기를 가깝게 했다. 남부 광동성에서는  향육(香肉)이라 불렀다.
그러나 청나라 이후 개고기를 피하게 되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사냥이 주업인 기마민족이다.
수렵민족에세 개는 사냥의 동반자이자 동료이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사회적 문화적 지위가 다르다.

문화인류학자인 미국의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개가 사냥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곳에서는
개를 먹을 이유가 없었지만, 개가 사냥에 꼭 필요하지 않거나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는 개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는 매우 중요하며 각 인간 집단은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각자의 생태학적 조건 속에서 고유한 식문화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문화의 식습관이 다른 문화의 식습관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되겠다. 


사회 초년병 시절의 어느 복날, 하늘 같은 부장을 따라 직원들과 함께 보신탕 집을 간 적이 있다.
나는 부장 모르게 삼계탕을  주문했다. 나중에 그걸 알게 된 부장은 삼계탕을 취소하고 짓궂게도
나에게만 특 사이즈의 보신탕을 시켜주었다.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말라는 엄명과 함께.
삼계탕을 먹다보니 그 양반 생각이 난다.
올 복날에도 걸죽한 입담과 함께 삼계탕 대신에 보신탕을 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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