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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을 보고

by 장돌뱅이. 2021. 8. 20.


요즈음 탈레반과 함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경쾌한 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싱그러운 모습.


나는 이 사진을 작년 가을 한 영상 강좌를 수강하면서 처음 보았다.
강사는 사진을 공유 화면에 띄운 후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을 알려주며 찍은 장소를 물었다.
나는 서남아시아나 중남미 등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내전과 테러, 그리고 여성 차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아프가니스탄에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슷한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 제법 있었다. 

1960년대 아프간 패션 디자이너 Safia-Tarzi

 

1960년대 아프간 고등학생

 

1970년대 카불 Polytechnical University의 학생들


사진 몇 장이 모든 상황을 압축할 수는 없겠지만, 196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실제 '중앙아시아의 파리'라고 불리 정도로 자유롭고 현대적인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외침과 항전, 그리고 다시 내전과 외침이
거듭되면서 참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미국 사진 기자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가 1984년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카메라에 담은 "아프간 소녀"에선  당시 아프간 사람들의 고통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진 옷과 지치고 겁에 질린 듯한 표정, 그러면서도 정면을 응시하는 초록의 눈빛은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1989년 소련군이 철수하고 기나긴 내전끝에 탈레반(혹은 탈리반)이 1996년부터 집권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에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중되었다.

탈레반은 '학생들'이란 뜻이며, 이는 초기 구성원의 대부분이 파키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 학생들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탈레반은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를 앞세워 비이슬람 문화를 철저히 배격했다.
2001년 세계적인 불교 문화 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폭파하는가 하면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억제했다. 
여성의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고 시야마저도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의 착용도 강요되었다.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영어 제목 "The Breadwinner")은 바로 이 탈레반 통치 시기가 배경이다. 
여성은 물건을 살 수도 팔 수도 없고  우물에서 물을 기를 수도 없다. 심지어 남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도 할 수 없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가 탈레반에게 끌려가자 파르바나의 가족은 집에 갇히고 먹을거리도 떨어진다.
마침내 11살 파르바나는 머리를 잘라 남장을 하고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간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고달픈 현실 속에 전해오는 옛이야기의 뜨거움과 같은 처지의 남장 친구와 함께 꿈꾸는 열대 해변의
미래가 수채화처럼 여리고 투명한, 그래서 따뜻하면서도 아픈 영화였다.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자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이룬 카불 공항의 광경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오래전 베트남의 사이공함락을 연상케 하는, 아니 그 이상의 참상이 아닐 수 없다. 
뉴스는 연이어 예전에 탈레반이 저질렀던 잔인한 야만적 행위를 들추어내고, 
그것이 다시 반복될 것인가에 주로 촛점을 맞춘 보도를 하고 있다. 


어떤 역사적 실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돌연변이로 태어나지 않는다.
탈레반 역시 고립된 특정 지역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돌발적이고 기괴한  집단일 수 없다.
탈레반의 출현과 진화의 배경에  어떤 내외부적 상황과의 '작용·반작용'이 있었던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의 눈물'과 탈레반의 '야만'에 대한 주목과 함께 그것에 대한 관심과 통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자들의 신체를 가리는 차도르 같은 풍습은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몰려오기
전까지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강요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전기까지는 유교의 이념이 지나치게 교조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적 요인이 거쳐간 뒤에는 반상의 계급적 구별이 엄격해지고 
지배층의 착취적 성격이 강화되었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가중되었다고 한다.)
통제하기 힘든 외적 폭력에 노출되면 인간 사회는 내부의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그 폭력을 전가하게 되는 것일까?


멀고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생소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갖는 건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의 
건조한 계산 때문만이 아니다. 고대 로마 희곡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테렌티우스가 말했다.

"나는 인간이다. 인간과 관련된 것은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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