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by 장돌뱅이. 2021. 8. 24.


하루가 지나면 우린 만날 것이다.

그러나 하루 동안 사물들은 자라고,
거리에선 포도가 팔리며,
토마토 껍질이 변한다.
또 네가 좋아하던 소녀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우체부를 바꿔버렸다.
이제 편지는 예전의 그 편지가 아니다.

몇 개의 황금빛 잎사귀, 다른 나무다.
이 나무는 이제 넉넉한 나무다.

옛 껍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대지가
그토록 변한다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주랴?
대지는 어제보다 더 많은 화산을 가졌고,
하늘은 새로운 구름들을 가지고 있다.
또 강물은 어제와 다르게 흐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건설되는가!

나는 도로와 건물들,
배나 바이올린처럼
맑고 긴 교량의
낙성식에 수없이 참석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인사를 하고
화사한 네 입에 입맞출 때
우리의 입맞춤은 또 다른 입맞춤이요
우리의 입은 또 다른 입이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그저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변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것과
이 땅에 살고 있음에 대해 건배.

우리의 삶이 사위어가면
그땐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증오처럼 차겠지.

그땐 우리 껍데기를,
손톱을, 피를, 눈길을 바꾸자꾸나.
네가 내게 입맞추면 난 밖으로 나가
거리에서 빛을 팔리라.

밤과 낮을 위해
그리고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  파블로 네루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가」-


일요일 아침, 아내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커튼을 열고 보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베란다의 문과 창문을 열고 소파에 드러누워 파블로 네루다의 시 몇 편과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며칠 전 누님이 보내준 토마토로 주스를 만들어  아침을 대신했다.

손자에게서 영상 전화가 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통화를 마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언제부턴가 매일 반복하는 아내와 나의 일과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손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점심을 막 먹었다고 했다. 소고기와 메추리알,
그리고 멸치가 맛있었다며 할아버지는 왜 아직 안 먹었냐고, 뭘 먹을 거냐고 쉼 없는 질문을 던졌다.


손자가 궁금해 한 우리 점심은 명란파스타였다.
책 속의 레시피에 따라 껍질과 분리한 명란을 삶은 스파게티 면과 함께 볶았다.
처음 만들어보는 음식이지만 아내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점심을 먹으며 아무래도 손자를 보러 가야겠다고,  전화를 자주 하는 것은 보고 싶다는 의미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나와 손자가 전생에 연인 사이가 분명하다고 했다. 
잠시 후 귀띔을 받은 손자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할아버지 진짜 올 거예요?"

계획에 없던 일이라 부랴부랴 서둘러야 했다. 아내는 냉장고 속을 뒤져 우리가 먹으려고
준비해 두었던 음식과 과일 몇 개를 꺼내며 '친정 엄마이자 장모'가 되었다. 
"갑자기 가게 되니 가져갈 게 없네." 

그런데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보험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점프선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20분 만에 와주었다.
직원이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차의 연료가 바닥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주유를 하기 위해 엔진을 끄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그냥 가기로 했다. 

"경고등이 들어와도 50KM 정도는  갈 수 있을 것이니 충분해. 왕복을 해도 되니 걱정 마."
주유 문제에 관한  한 나의 주장은 아내에게 별로 효과가 없다는 알면서도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오래전 미국 생활 초기, 장거리 여행길에서 한국에서처럼 경고등 들어온 다음에 주유소에 가겠다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다 인적 없는 깜깜한 오지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한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아무튼  차는 주유 경고등이 선명한 채로 딸네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손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와 품에 안겼다.
그리고  여러 가지 놀이를 놀이방 바닥에 한꺼번에 쏟아놓고  득의만만하게 외쳤다.
"오늘 이거 다 놀 거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손자도 놀이를 다양한 버전으로 변화시키곤 한다. 예를 들어 주차타워를
조립하여 차들을 이동시키다  별안간 경찰차와 도둑차로 바꿔 추격과 도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손자의 지명에 따라 경찰과 도둑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놀이방은 경찰서가 되었다가 감옥이 된다.  
바람개비가 마귀의 손짓이 되기도 하면 기차가 킹코브라가 되기도 한다.

땀까지 뻘뻘 흘리며 논 끝에 시간이 흘러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손자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뒷날 걱정 없이 한껏 놀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럼 다음번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올게. 금요일에 와서 토요일에 가는 게 좋아?
아니면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가는 게 좋아?"
손자를 위로하기 위한 나의 물음에 손자는 지체 없이 답을 했다.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가!" 

아내와 딸은 내가 자충수를 두었다고 깔깔거렸다.
딸네 집 근처 주유소에서 연료를 꼭꼭 눌러 가득 채우고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블루투스 볼륨을 올려 옛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와 손흥민 선수의 축구경기를 보다 잠이 들었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그저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꽃과 비를 위해 건배.

  변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이 되는 것들을 위해.
  우리가 숨쉬고 있다는 것과
  이 땅에 살고 있음에 대해 건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