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손자'저하'를 위한 수랏간

by 장돌뱅이. 2021. 9. 3.


'저하'를 보러 가는 날은 바쁘다. 저하의 취향에 맞춘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며칠 연이어 저하의
처소에 묵어야 하는 날은 가짓수를 늘여야 해서 부엌이 각종 조리 도구와 양념, 참고서적 등으로 정신이 없어진다. 

아내는 음식을 만들 때, 조리 순서도 효율적이고, 그릇이나 양념도 순서에 따라 꺼낸다.
또 중간중간 설거지와 정리를 하여 항상 부엌이 정돈된 느낌인데, 나는 이게 잘 안된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난 후에 한꺼번에 정리를 하기 때문이다. 하수(下手)라는 이야기다.
볶음이나 전을 만들 때 적절한 양의 기름을 두르는 것도, 뒤집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아직 서툴다.재료를 가지런히
써는 것도 쉽지 않고 레시피의 양보다 많이 만들 때 양념을 기계적으로 비례하여 늘였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레시피를 건성으로 읽어 필수 재료를 빼거나 조리 순서를 건너뛰어서 바로 잡느라 허둥거릴 때도 왕왕 있다.  

"아니야, 당신 대단해."

그래도 아내는 늘 칭찬을 더해 주고 나는 그때마다 춤추는 고래가 된다.

단호박죽

 

단호박된장국


부엌에 서면 몸은 분주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식구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에 뿌듯해지고 음식이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싱크대와 조리대, 냉장고와 불판을 오가는 과정이 내겐 흥미로운 여행 같다.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도 그때마다 느낌이 다른 ······.

아욱국

 

숙주나물볶음

 

북어구이

 

파인애플볶음밥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왜 소중한가? 그것은 영양가 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섭생적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심성이 인격 안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

- 김훈의 글 중에서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