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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문어 선생님과 문어 요리

by 장돌뱅이. 2021. 9. 9.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은 감독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만난 문어를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일에 지친 감독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바다를 찾았다가 우연히 한 마리의 문어를 보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문어의 특이한 모습과 행동이 감독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점차  호기심이 문어의 생활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넓어지면서 감독은 문어를 만나기 위해 매일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어 역시 인간의 접근을 인지하고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경계를 늦추고 친근감 있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먹이 사슬이란 자연의 엄정한 규칙 속에서 문어는 생존을 위해 먹잇감을 사냥하고, 동시에 상어와 같은 상위 포식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생을 영위해 나간다. 감독은 문어와 서로를 만질 수 있는 정도로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지만 문어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문어의 일상 - 노동과 휴식, 놀이와 모험, 상처와 치유, 놀이와 위험- 을  적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기록할 뿐이다.

이 영화는 2021년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프리카 끝에 있는 바다 속에서 일어난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다른 관계를 엿볼 수 있기를 바랐다"라고 말했다. '보편적인 차원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 함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고 지키는 권력자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평등한 병렬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비로소 자신도 자연 속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연의 한 부분임을 자각하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KEEP WILDLIFE WILD!"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될까?

 영화를 보고 나서 냉동실에 얼려 놓은 문어가 생각났다.

'어쩐다. 그래도 먹고 싶긴 한데······.'
상어처럼 상위 포식자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냉정해지기엔 영화 속 문어의 삶이 너무 애틋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감성을 오래 간직할 수 없었다.
며칠 미루긴 했지만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문어 해동을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문어를 치자 다양한 요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어야, 아내와 나도 너 좋아해. 바다 속에서도 바다 밖에서도!


문어숙회
문어물회
문어볶음밥
문어미역무침
문어 세비체(CEB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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