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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서산·태안 돌아오기 2

by 장돌뱅이. 2022. 1. 18.


창호지에 노란 아침 햇살과 나뭇가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문을 여니 하늘이 활짝 개어 있었다.

 


9시에 흑임자 죽과 과일 등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가 배달되었다.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다. 산책이라 했지만 숙소 내 전망 데크를 가보는 거라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거리였다.
바람은 어제에 비해 잔잔했고 햇빛이 짱짱하여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크에서 갯벌을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가 커피를 마시며 체크아웃 시간을 기다렸다.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를 보러 가야 했다. 체크아웃을 한 후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다는 직접 보아야 바다답다.
사진이나 기억만으로는 직접 대하는 일망무제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통쾌한 감정을 대체할 수 없다.
썰물로 바다가 멀리 물러가 넓어진 해변을 거닐며 아내와 고등학교 시절의 딸아이와 왔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아이가 보낸, 딸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에 감사했다.  

 


태안에 오면 빠트리지 않고 들리는 식당이 있다. 우럭젓국과 간장게장을 내는 토담집이다.
(*이전 글 참조 : 잘 먹고 잘 살자 4 - 충청도(1) )

우럭젓국은 반건조 한 우럭과 무, 새우젓 등을 넣고 끓여내는 음식이다.
국물이 뽀해질 때까지 끓이면 우럭에서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우러나온다. 따끈한 국물에 몸이 풀어진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이 집의 고등어조림도 특별하다. 이 집의 주요 메뉴인 간장게장은 포장을 했다.

딸아이와 사위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조선시대 서해안 방위를 위해 성종 22년인 1499년에 완성되었다.
높이 5미터에 둘레가 2킬로미터쯤 된다.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도 이곳에서 열 달 동안 근무를 했다고 한다.
도성(都城)은 왕이 거처하는 곳이고 산성이 마을에서 떨어진 군사적 요충지에 세워진다면 읍성은 주거 지역에 세워진다.
해미읍성과 함께 낙안읍성이나 고창읍성 등이 그렇다. 조선시대에는 읍성이 전국에 190여 곳에 있었다고 한다.

해미읍성을 복원하면서 성내에 살던 160여 채의 민가와 학교를 철거하여 예전에(1990년대 말?) 왔을 때는
성내가 황량한 벌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 와보니 관광용으로 보이는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성벽길을 돌아볼 생각이었으나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남문의 진남루 좌우만 올라보고 성내를 걸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수난의 현장이기도 하다.
1797년 정사박해(丁巳迫害 )때부터 1866년 병인양요 이후까지 약 천명쯤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김대건 신부도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잡혀온 천주교인들은 교수형, 참형, 몰매질, 석형에,
팔다리를 들어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로 죽거나 집단으로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다.  

해미읍성 내 "순교기념비"


해미읍성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해미순교성지"가 있다.
매장된 순교자의 유해를 발굴하여 모신 곳이다.

 

해미순교탑

 


나는 그들의 끔찍한 죽음을 통하여 신이 어떤 축복이나 구원, 혹은 영광을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무고한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한 현실적·정치적·국가적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저것들은 대체 누구인가. 저것들은 왜 저러는가. 왜 죽여도 또 번지는가.
저것들은 어째서 삶을 하찮게 여기고 한사코 죽을 자리로 나아가는가"
김훈의 소설 속 임금은 죽음의 구덩이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그 사람들을 두고 질문인 것도 같고 탄식인 것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행렬이 삶을 하찮게 여겨서가 아니라 "기다림도 그리움도 목마름도 없는 세상"을 향한 강렬하고 치열한,
그래서 가련한 몸부림이였음은 이해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공약하는 후보들의  목소리가 높다.
긴 세월 '공약(公約) 즉 공약(空約)'임을 보아왔으니 그들의 말 그대로를 믿지는 않는다.
다만 순교자들처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은 멈출 수 없는 것이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를 덜 사랑하며 기도 할 뿐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저 먼 구름 위 아스라한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딘 땅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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