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피어나던 벚꽃이 어느새 화려하게 흩날린다. 길 위에도 하얗게 깔려있다.
올해 마지막 벚꽃놀이를 하자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자주 가는 냉면집부터 들러 '식후경'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대기하는 사람들이 만든 줄이 너무 길었다. 발길을 돌려 근처 카페에서 케이크와 커피로 대신하려고 갔더니 이번엔 쉬는날이라는 안내판이 입장을 막는다. 어쩔 수 없이 출출함을 견디며 걷다가 공원 편의점에서 물과 커피를 사서 그늘에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이 자욱하게 쏟아져 내렸다.
휴대폰에 담으려 했지만 매번 동작이 굼떠 꽃잎이 성긴 화면만 잡혔다.
미리 카메라 모드를 켜놓고 기다리니 이번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아내가 그냥 눈으로만 보라며 웃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작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봄이면 「벚꽃엔딩」, 「봄봄봄」 같은 노래만큼이나 자주 떠올리게 되는, 널리 알려진 이형기의 시 「落花」다. 나는 이 시를 하필 군 입대를 앞둔 지금 같은 봄날에 처음 읽었다. 앞뒤 구절을 자르고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만 서글프게 마음에 와닿았다.
친구 놈이 술집 송별회 자리에서 나를 놀리려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읊기도 했다.
"결별의 축복은 젠장······"
이제와 돌아보니 그 청춘도 별것 없이 세월을 따라 흘러갔다.
번듯한 외적 성취를 이룩하거나 충실하게 내면을 갈고닦지도 못한 채로.
"니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담배 끊은 것하고 곱단이랑 연애 한 거여."
생전의 어머님이 말씀 하셨다.
그때 "아니 제가 뭐 그렇게도 잘한 게 없단 말씀이세요?" 하고 툴툴거렸지만
나이 들어 꽃그늘에 앉아 가만히 아내 손을 잡아 보니 맞는 말씀이었다.
물 건너고 다시 물 건너
꽃구경하고 또 꽃구경하면서
봄바람 강가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그대 집
(渡水復渡水 도수부도수
看花㶎看花 간화환간화
春風江上路 춘풍강상로
不覺到君家 불각도군가)
-고계(高啓),「호 아무개 은둔자를 찾으러 가는 길(尋胡隱君)」-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에 걸쳐(1336∼1374)는 활동한 중국 시인
벚꽃에 이어 라일락과 진달래와 철쭉이 향기와 꽃봉오리를 준비하고 있다.
"꽃구경하고 또 꽃구경하며" 보내는 것만으로 봄은 숨가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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