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살던 릴리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워싱턴주 선빔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 할머니가 아프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이 가까워올 무렵 릴리는 비가 내리는 길에 누워있는, 몸집이 차만큼이나 거대한 호랑이와 마주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나올 법한 호랑이다.' 호랑이는 그 뒤로도 자주 나타난다. 릴리와 이야기도 나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질 못한다.
'호랑이는 '진짜처럼' 느껴졌다. (···) 진짜라고 느껴지는데 진짜가 아닌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릴리의 고민을 이해하고 호랑이의 존재를 믿어주는 사람은 할머니뿐이다.
할머니는 릴리에게 말한다.
"너는 특별해서 진실이 보이는 거야. (···) 너는 알아. 세상이 보이는 것보다 크다는 거."
미국 작가 태 켈러(Tae Keller)의 소설『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은 릴리와 할머니, 그리고 호랑이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다. 한국계 미국인, 이른바 '코메리칸'들의 이야기인 만큼 한국적 정서의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옛날에 옛날에 , 호랑이가 사람처럼 걷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가 그렇고, "일본 사람,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나쁜 일들 했어"라는 할머니의 아픈 회상도 그렇다. 집안 물건을 옮기는데도 '길일'을 따지고, 죽은 영혼들을 위해 고사를 지내며, 나쁜 기운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약초를 보관하거나 향초를 태우기도 하고, 오곡쌀을 숲에 뿌리거나 잣을 보름달 아래서 태우는 등 민간 신앙에 집착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좀 지나친 감은 있지만)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사회에서 뿌리찾기 식의 한국적 정체성 확인이나 은근한 자부가 이 소설의 지향은 아닌 듯 보인다. 그보다는 어린 소녀 릴리가 세상에 대한 의문과 갈등을 통해 내면적 성숙을 이뤄나가는 과정과, 할머니와 손녀 혹은 가족 간의 사랑,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가 공유하고 공감해야 하는 보편적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산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 가는 일이다. 겉으로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보이는 삶에도 저변에는 굴곡진 강바닥에 부대끼는 아픔과 상처가 있는 법이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할머니가 '자기에게 벽이 둘러쳐진 세상'에서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삶을 꾸리는데 성공'한 사람이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마음속 항아리에 담아놓은 '이야기'는 층층이 켜를 이루었을 것이다. 세상과 삶은 늘 보이는 것보다 크고 깊은 것이다.
"그 시절 밤이새까맸어. 밤 되면 어둠뿐이었어. 어둠뿐인데, 공주가 하늘 성에 살았어.
그 공주 아주 외로워서, 밤에게 이야기를 속삭였어. 그 이야기들 별이 됐어."
"별들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고요?"
"그래, 그래. 자, 들어 봐."
할머니가 나를 조용히 시키고는 이야기를 잇는다.
"그 하늘 공주가 이야기 아주 많이 해서, 하늘에 빛 가득해. 어둠 없어!
그래서 땅 마을 사람들이 아주 행복했어. 이젠 밤이 없어서."
나는 칠흙처럼 까만 창밖을 보며 몸을 떤다. '밤이 없어서 ······.'
"이야기는 마법이 있어. 아주 밝고 아주 강력해. 그러니까 당연히 호랑이들이 갖고
싶어 해. 호랑이들은 높이 산꼭대기에 별 가득 모으고 하늘 지켰어." (62쪽)
할머니는 그 '이야기'들을 훔쳤다. 공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쩌면 '힘든 일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그냥 그런 일이 있다는 걸 누가 알아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 외롭고 힘든 날이었으리라.
"이야기의 마법은 강력하지, 사람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그리고 이야기를
가두어 놓으면 그 마법은 더욱 커져. 그리고 때로는 상해 버리기도 해.
마법이 일종의 독으로 변하는 거야." (116쪽)
강력한 마법의 '이야기'는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다시 세상과의 관계 속으로 풀어 보내지 않으면 독이 되고 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마치 '누군가가 자기를 발견해서 세상에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버전으로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받으러 출몰하는 호랑이는 상대의 삶의 이면을 이해하려는 매개체이자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며, 동시에 자신의 의지이며 분신이다.
"이야기에선 질서와 정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감정이 중요하지. 그리고 감정이 늘 이해가 되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야기란 ······ 물 같아. 비 같고. 이야기는 우리가 꽉 잡아 보려 해도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거든. (···) 그게 무서울 수도 있지. 글도 생각해 보면 물은 우리한테 생명을 주거든. 물이 대륙을 연결하지. 사람도 연결하고. 그리고 물은 가만 멈춰 있는 조용한 순간들이면 우리 스스로를 비춰 볼 수도 있고. 무슨 말인지 이해되니? " (235 ∼ 236쪽)
"지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은 한숨만으로도 숲을 흔들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면 , 우리가 내뱉은 말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를 떠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동화 속 이발사는 대나무 밭에라도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지 않았던가.
호랑이를 덫에 가둔다고? 아니, 세상을 향해 풀어놓아야 호랑이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 샌가 돌아올 것이다.
※ ※ ※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에는 내가 주목한 '이야기'외에도 맑고 순수한 서정과 삶의 진실을 가만히 일깨워주는 말과 순간들이 많았다.
어린 소녀 릴리가 동요하지 않고 호랑이의 눈빛을 직시하며, 더 이상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애)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순간, 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 할머니가 담담히 맞이하는 생의 마지막, 그것을 '치유'로 받아들이는 릴리의 가족 등등.
무릇 맑고 순수한 서정이란, 아름다움을 쉽게 말할 수 없는 팍팍한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밑받침되지 않는 한, 자칫 유희이거나 퇴폐가 될 위험이 내재되어있는 법이다. 하지만 코로나 발생 숫자에만 온 관심을 2년 넘게 쏟아온 이즈음에 고등학교 시절 밑줄을 그어가며 읽던 『어린 왕자』나 대학 신입생 시절의『자기 앞의 생』처럼 감성을 촉촉이 적셔오는 이야기에 더러 마음을 담가도 좋지 않겠는가.
(*이전 글 참조 : 『자기 앞의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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