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영화『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by 장돌뱅이. 2022. 4. 4.

신약성경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MARY)가 나온다. 구약성서의 MIRIAM과 같은 이름이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대로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은 마리아다. 사람들은 마리아를 '여인 중에 복되다(루가 1:42)'로 칭송하지만,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는 참척의 아픔을 경험한다. 마리아는 서기 50년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글레오파(Cleophas)의 부인이며(요한 19:25),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인(마태오 27:56) 마리아다. 그녀 또한 예수의 죽음을 목격했고,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주검을 수습하여 동굴 안에 안치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안식일 다음날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갔다가 예수의 부활을 알게 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세 번째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다. 독실한 믿음을 가진 여인으로 베드로가 감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후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12:7-17).


네 번째는 베다니아라는 곳에 사는 라자로와 마르타의 여동생 마리아다.  예수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라자로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살려주었다(요한 11:38 - 44).
마리아는 예수의 발을 향유로 씻기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주었다.(요한 12:3)

 *이를 본 예수의 제자 가리옷 사람 유다가 불만스러워하는 말은 기억에 남는다.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징인가?"
(···)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 12:4 - 8)
예수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경에서 이해하기 힘든 장면 중의 하나이다. 읽을 때마다 나는 유다의 말이 옳게 느껴진다. 

다섯 번째는 일곱이나 되는 악령에 시달리다 치유를 받은 막달라 마리아( Mary Magdalene)다.  그녀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돌봤다. 

루가 7장 36∼39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 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은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자와 막달라 마리아를 동일시하면서 그녀를 부정한 여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의 죽음과 주검 안치 현장에 있었고 예수가 부활하여 처음으로 만날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람이었다.

여섯 번째는 로마서에 나오는 마리아다.
"여러분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한 마리아에게 문안을 주십시오."(16장 6절)
이 마리아가 앞선 어느 마리아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을까?

신약성서에는 마리아뿐만 아니라 여자들에 관해 언급이나 여자들이 한 말이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서 저자들이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은 다섯 번째 마리아에 관한 영화이다.
전해지는 기록이 많지 않으므로 영화 줄거리는 아마 대부분 허구일 것이다.
마리아는
정해진 결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서 외면을 당한다. 어느 날 마을을 방문한 예수와 일행을 만나 깨달음이 얻게 되고 그들을 따라 길을 나선다. 그리고 예수를 보좌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영화 마지막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서기 591년 그레고리 교황의 막달라 마리아 창녀설 언급 이래 그 오해가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나 2016년 교황청은 그녀를 사도 중의 사도로 부활한 예수의 첫 증인으로 공식 인정했다."

성서 저자들의 '선택'에 의해 누락된 또 다른 여성 제자는 없었을까? 
예수가 죽는 현장에 남자 제자들은 없었음을 성서는 보여주고 있다. 열두 명의 남자 제자들은 모두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오직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만 예수의 마지막을 지켰다. 부활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그 소식을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는 남자 제자들에게 알려준 사람은 여자들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을 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무려 천오백 년 동안 창녀로 평가되던 여인이 예수 제자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도 그렇다. 오류를 바로잡을 만한 어떤 역사적·신학적 근거가 새롭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평가의 주체와 관점이 달라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오래전부터 무엇인가에 대해 선택하고 기록하고 평가하는 권력이 있어 왔으며 그들이 법과 제도, 기준과 개념을 만들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구속해 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성경 또한 인간의 손으로 쓰였기에  그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메리 데일리(Mary Daly)는 그의 저서 『하느님 아버지를 넘어서(Beyond God the Father)』에서 "만약 하느님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곧 하느님"이라고 했다. 하느님이 특정한 성적 실체가 아닌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 또는 힘임에도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하느님도 남성적인 존재로 투사된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그랬고 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펑펑펑  (0) 2022.04.08
가지 맛을 알면 어른?  (0) 2022.04.07
2022 카타르 월드컵  (2) 2022.04.03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0) 2022.04.01
마늘과 양파  (0) 2022.03.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