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태국

태국 맛 느껴보기

by 장돌뱅이. 2022. 3. 30.

태국 물국수(꾸에이띠여우남)

윗사람과 동행하는 출장은 힘들다. 해외 출장은, 더군다나 그가 음식에 까탈스러운 입맛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렇다. 오직 한식만을 고집하는 극도로 입이 짧은 직장 상사가 있었다.
왜 그런지 비행기 기내식은 종류를 불문하고 먹지 않고 대신 과일이나 라면을 달래서 먹을 정도였다.
걸귀의 식성을 타고나 사람이 먹는 거라면 원효대사의 해골물도 개의치 않을 나로서는 그와 함께 하는 출장이 상하관계를 떠나서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상대방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깨작거리는데 나 혼자서 왕성한 식욕을 보이기는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

한 번은 태국에서 현지 손님들과 골프를 친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훌륭한 음식들이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태국식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태국 음식에서 나는 향이 싫다고 했다.
친한 친구라면 이럴 때 "그냥 입에 욱여넣고 씹어 삼켜라, 이 자식아, 안 죽는다!" 하고 험한 표현으로 쏘아 주겠지만 생사여탈권을(?) 쥔 상사라······.

더운 날씨에 골프를 쳤으니 얼마나 배도 고프랴. 하지만 그 역시 손님들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자리다 보니 주린 배에 애꿎은 맥주만 밀어 넣었다. 그런 그가 딱해 보여서 쌀국수를 권해 보았다.
국수를 좋아하는 식성을 알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찝찝해하면서도 한두 젓가락을 시도하던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급기야 국물까지 다 마시고 흡족해했다. 

출장업무를 마치고 귀국을 앞둔 마지막 날 그가 놀랍게도 쌀국수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숙소 근처 외관은 허름해도 이름난 국수가게를 권했지만 그는 호텔 내 식당을 선호했다.
사실 쌀국수는 고급식당이라고 해서 더 나은 맛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수만을 취급하는 가게나 길거리 노점상이 나을 수 있다. 첫 국수 가락을 뜨는 그를 주시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골프장 국수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국수를 거의 그대로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서 매번 가는 한국식당으로 가야 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90년 대 후반 첫 태국 여행에서부터 쌀국수를 좋아했다.
방콕 스쿰윗이나 까오산에 호텔 조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먹어야 할 국숫집도 생겼다. 

태국 쌀국수 "꾸에이띠여우"는 면의 굵기도 여러 종류고(쎈미/가느다란 굵기, 센렉/칼국수 넓이, 쎈야이/가장 넓은 면), 들어가는 내용물도 식당마다 다르다. 돼지고기, 소고기, 어묵, 내장튀김 등등. 거기에 추가하는 양념과 소스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육수도 투명한 것이 있는가 하면 갈색이나 붉은색도 있다. 물국수는 "꾸에이띠여우남", 비빔국수는 "꾸에이띠여우행"으로 부른다. 

며칠 전 아내가 "인스턴트  꾸에이띠여우"를 택배로 주문했다. 서울 연남동의 유명 태국 음식점의 상표를 걸고 만든 것이라고 했다.  국수를 삶는 것 이외에는 소스를 덥혀 붓기만 하면 되었다.
맛은 아무래도 태국 현지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에서 먹은 웬만한 태국 음식보다는 나았다. 

똠양꿍 국수

꾸에이띠여우에 이어 똠양꿍 국수도 주문을 했다.
이제까지 똠양꿍은 수프와 건더기를 먹었지 거기에 국수를 말아 먹어 본 적은 없다.
똠양꿍 국수는 순화된 국물 맛이었지만 태국 '향수'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똠양꿍은 '똠(끓이다)+얌(새콤한 맛)+꿍(새우)'이란 뜻의 합성어로 "새콤하게 끓인 새우찌개"다.
레몬그라스, 생강, 코코넛밀크, 고추, 등이 들어가 시고 짜고 달고 매운맛을 낸다.
매우 자극적이어서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뚜렷하다. 나는 평소에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지 않지만 똠양꿍만큼은 강한 맛을, 아내는 순하게 변형된 맛을 좋아한다.

음식 먹으며 여행을 떠올리는 건 흔한 일이다. 꾸에이띠여우와 똠양꿍 국수 끝에 아내와 태국을 이야기했다. 첫 외국 경험은 인도네시아이지만 회사 일로 주재를 한 것이고, 가족이 여행으로 처음 떠난 곳은 태국이라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딸아이가 어렸을 적 특별히 좋아하던 곳이어서 태국은 늘 각별하게 회상된다. 그 아이가 어느새 커서 그때의 자신 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는 그때의 부모님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렇게 가버린 세월이 크게 아쉽지 않으니 다행이고 고마울 따름이다.

'여행과 사진 > 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국 '워밍업'  (2) 2022.06.07
길고 짧은 소설 속 "방콕"  (0) 2022.04.27
떠남은 축복이고 축제  (0) 2021.06.13
다시 치앙마이를 걷고 싶다  (0) 2021.06.12
저 바다에 누워  (0) 2021.06.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