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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태국 '워밍업'

by 장돌뱅이. 2022. 6. 7.

태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태국 분위기에 젖어보기 위한 '워밍업'을 시작했다.
여러 차례 다녀와 익숙한 방콕이고, 호텔 수영장에서 뒹구는 단순 일정의 여행이라 특별히 준비랄 건 없지만 오래간만의 해외여행이니 이런저런 사전 이벤트를 만들면서 설렘을 키우고 싶었다.

연남동 철길을 걷고 난 후 찾아간 태국 식당 "소이연남"이 그 시작이었다. 소이(soi)는 골목길을 뜻하는 태국 말이다. 소고기 쌀국수와 뽀삐아, 그리고 싱하비어를 주문했다. 이름난 식당이니만큼 맛은 틀림없었다. 태국을 생각하면 못 먹을 가격이지만 여긴 한국이니 감수해야 할 노릇이었다. 

같은 쌀국수지만 태국식과 베트남식은 색깔부터 다르다. 태국 쌀국수는 육수가 진하고 향이 강하다. 면 굵기도 여러가지고 무엇보다 국수에 올리는(들어가는) 고명 -  돼지고기, 소고기는 물론, 어묵 , 내장 튀김, 선지 등- 이 다양하다. 여기에 태국식은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피시소스, 설탕, 땅콩가루. 고춧가루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아내는 베트남 '퍼(Pho)' 보다는 태국의 '꾸에이띠여우'를 더 좋아한다.

태국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다. 《방콕에서 잠시 멈춤》은 방콕에서 '몇 달 살기'를 반복하며 체험한 방콕의 문화와 정치와 사람에 관한, 그리고《입 짧은 여행 작가의 방콕 한 끼》는 음식과 식당에 관한,  글이었다. 유재현의 《달콤한 열대》는 열대 과일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었다.

십여 년 전에 여행 동호회의 지인이 출간한  《태국 음식에 미치다》도 매번 태국 여행 전에 읽는다. 프린트를  해서 책 사이에 끼워둔 CNN의 여행 기사 <40 Thai foods we can't live without>도 함께 읽게 된다. 이어서 《태국 다이어리, 여유와 미소를 적다》, 태국 동화집 《원숭이와 벌꿀》 등을 추가로 읽어볼 생각이다. 

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넷플릭스에서 태국 영화 몇 편을 보았다. 《너를 정리하는 법》, 《배드 지니어스》, 《원 포더 로드》  등이었다.

《너를 정리하는 법》에서  주인공은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며 집안 정리하려고 한다. 
정리의 기준은 오직 '오늘의 쓸모'. 그러나 쉽지 않다. 오래되고 쓸모없다고 생각한 물건들 하나하나가 지닌 사연이 여전히 현실을 간섭하고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잊은 척한다고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야. 너 혼자 잊는다고 끝나는 건 없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appy Old Year》이다. 망각할 수는 있어도 사라질 수는 없는 '과거(Old Year)'가 설혹 현실과 'Happy'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삶은 어차피 그런 떨쳐버리고 싶은 잡동사니들조차도 끌어안고 견디며 나가야 하는 것이니까. 

영화 《배드 지니어스》

《배드 지니어스》는 천재 학생이 주도하여 저지르는 시험 부정 행위에 관한 영화다. 같은 반 친구들을 위해 시작한 '바늘도둑'의 커닝(cunning)은 미국 유학 시험까지 판을 벌리는 '소도둑' 비즈니스로 커진다. 다소 황당함은 있지만 영화만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현실은 때로 상상을 앞서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강남의 한 유학원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다니는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학비는 한 학기에  6만 바트(약 220만원)으로 나온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7천3백불 정도인 태국의 일반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교육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드러난다. 방콕에 국제 학교는 85 곳이나 있다. 우리나라 전체  40 곳(서울 10 곳 포함)에 비하면 월등히 많다. 높은 교육열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이런 현상을 부추켰을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비즈니스로 알게 된 한 (중국계) 태국인은 아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외국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재력은 충분히 조기유학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는 일단 국제학교에서 태국인끼리의 인맥을 형성하는 게 향후 비즈니스를 하는데도 유리할 것이라는 속내를 덧붙였다. 중국인들이 지닌 문화적 특성인 '꽌시(關係)' 의 끈질김과 그들의 축재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 놀라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학연과 인맥······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원 포 더 로드》는 암에 걸린 남자가 친구를 불러 함께 여행을 하며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내용인데 이야기의 전개와 화면 구성, 배경음악이 작위적이고 과장되어 있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상 세 편의 영화에 다 나오는 여배우가 있었다. 이름이 "추티몬 충차로엔수킹"이었다.
요즘 태국에서 잘 나가는 배우인 듯했다.

B-tv에서도 한 편을 보았다.
《부력》은 로드 라스젠(Rodd Rathjen)이라는 호주 감독이 만든 태국에 관한 영화다. 
내용은 단순하다. 14살의 캄보디아(?)  소년이 한 달에 8천 바트(220불 정도)를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태국으로 향한다. 농사를 짓는 가난한 고향에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등록거주자(불법노동자) 신분인 소년은 공장이 아닌 배로 끌려가 바다 한가운데에 갇힌다. 그리고 한 컵의 밥과 더러운 물만 제공되는 환경 속에서 노예와 같은 노동에 시달린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 위한 요구나 항의는 바로 죽음이다. 몸이 아파도 안된다. 쓸모 없어지면 또한 죽음이다. 탈출의 희망은 어디에도 없다. 끝없는 노동만 반복될 뿐이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새우잡이 '멍텅구리 배'의 강제노동을 떠오르게 한다. 

《부력》은 실제 이런 불법 강제 노동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아이들을 포함한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동남아에서 강제로 '노예' 어업 노동에 동원되고 있으며 이러한 착취로 벌어들이는 어획량 총액은 60억 달러에 달한다고 말한다. 

여행 중 내가 먹게될 태국 해산물은 누구의 노동을 거친 것일까?
집의 식탁에 오르는 수입 해산물 경로의 시작은 어디일까?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깊은 수면 아래 감추어진 진실일수록 수면 위로 솟구치려는 '부력'은 강한 법이다. 당장에 답을 얻을 수 없고 적절한 어떤 행동을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질문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일이겠다. 여행에서건,  생활 속에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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