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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길고 짧은 소설 속 "방콕"

by 장돌뱅이. 2022. 4. 27.

우연히 제목만 보고  고르는 책이 있다. 김기창의 소설『방콕』이 그랬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다른 책들 사이에 "방콕"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꺼내 들었다. (제임스 셜터의 단편 소설 「방콕」은 장편『방콕』속에 인용되어 있어 알게 되었다.)

방콕에 사는 지인이 문자를 보내준 날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격리도 없어졌으니 방콕에 한번 오시죠?" 
하지만 막상 알아보니 예전처럼 장기간의 격리만 없어졌을  뿐  아직도 타일랜드 패스를 발급받는 따위의 몇 가지 성가신 절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창때와 비교하면 요즈음은 '껌' 수준이니 불평하지 마시고."
지인은 절차가 보이는 것만큼 번거롭지 않다고 나의 '여행 근육'을(?) 자극했다.

소설『방콕』에는  "망고 디저트 같은 달콤함과 썬 베드 위 안락함"을 주는 여행의 환상은 없다. 대신에 한국인과 베트남인과 태국인과 미국인의 이리저리 얽힌 관계가 만들어내는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이 있다. 

"많이 벌려면 많이 잃어야 해.
  뭘 잃어?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뭔데?
  존엄."

베트남인 훙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손가락 세 개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제대로 된 위로나 치료, 보상을 받지 못한다. 손가락과 함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킬 수 없었던 훙의 분노는 방콕까지 이어지며  "검붉은 액체"가 낭자한 파국을 불러온다. 소설 속 누군가가 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는 일이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는 사람이 더 많아. 그래서 끝없이 반복되는 거야."

작가도 소설 『방콕』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건 '방콕'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누군가의 작은 '머뭇거림'이 있는······.

"이곳이 천사들의 도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반대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머뭇거림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은 윤리의 종말이지 다른 무엇은 아닐 것이라는 점도."

소설 『방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에서 혹은 여행 중에 흔하게 볼 수 있긴 하지만 뭔가 인위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듯 하여 내게는 현실 속 구체적인 존재로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점은 있었다. 그래도 속도감 있는 진행과 아내와 내가 여행지로서 좋아하는 방콕 시내 곳곳의 익숙한 지명이 자주 나와 읽는 즐거움과 친근감을 주었다. 
*          *          *          *          *         
소설에 나오는 장소와 여행 몇몇 기억을 합쳐본다.

소설 속 은퇴한 미국인 벤이 렌트한 집은 실롬역 근처에 있다.
(실롬역, 그 근처에 아내와 나도 자주 갔다. 르메르디앙 외에 여러 숙소에 묵은 적이 있다. 태국 실크 제품으로 유명한 짐톰슨의 본점, 태국 음식이 좋았던 식당 르언우라이와 탄잉, 마사지를 받던 바디튠,  짝퉁 상품과 환락가로 유명한 팟퐁, 64층 건물의 옥상에 있어 탁 트인 야경을 보던  식당 겸 바 시로코가 있는 곳.)

반얀트리에서 내려다 본 실롬 지역
호텔 르메르디앙
식당 탄잉
시로코의 야경

"룸피니 공원은 거대한 인공 호수 주변으로 짙은 녹음이 우거진 도심 속 정원이었다. 호수 위로는 주변 마천루와 구름의 그림자가 수묵화처럼 번져 있었다. 풀밭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은 채 일광욕을 즐겼다.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바닥에 수건을 깔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물왕도마뱀은 나무를 오르내리고 수면 위를 헤엄쳤다. 온갖 새들이 그늘 아래서 땅에 부리를 쪼아 댔다."

룸피니공원

"저녁이 오면 근처 경기장에서 무에타이 경기를 관람했다. 무에타이 선수들은 뼈가 강하게 부딪치는 타격을 무심하게 주고받았는데 벤은 그걸 볼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면서 좋아했다."

(태국인이 강추하여 룸피니 체육관으로 무에타이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나와 아내는 '별로'였다. 그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펀치를 날릴 때마다 튀는 땀방울까지 볼 수 있는 링사이드 좌석이 아니어서 그랬을 거라고 했다.) 

"늦은 밤에는 팟퐁을 갔다. 팟퐁은 유명한 환락가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는데 지금은 장기 여행자들과 주거가 일정치 않은 뜨내기들이 주변에 진을 치듯 모여 있었다. 밤에는 관광객들까지 합세했다. 팟퐁을 찾은 사람들은 낮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밤을 소비했다. 서로를 유혹하고 희롱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터져 나오는 분수처럼 웃고 울었다.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피해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사과했다. 죄책감이 낮의 일이라면 밤의 일은 질문을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적어도 팟퐁의 밤은 그랬다. (···) 벤은 팟퐁에서 주기적으로 '야바'라 불리는  각성제를 구입했다. 헤로인이 조금 섞인 것이었다."

낮과 밤의 팟퐁

"정우와 섬머는 강가 카페로 들어가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차오프라야강이 두 사람의 발아래서 출렁거렸다. 납빛의 강은 바다처럼 수심이 깊어 보였다. 크고 작은 보트들이 강물 위에 떠 있었고 선착장 주변으로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방콕을 여행하면 빼놓지 않고 강변엘 갔다. 야시장을 가기 위해서도 가고 롱테일 보트를 타고 강을 돌아보기 위해서도 가고 강변 카페에서 '물멍'을 하기 위해서도 갔다.)

"악어농장.
거긴 얼빠진 관광객들이나 가는 곳이야.
(···) 악어 농장은 방콕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20킬로미터를 내력야 했다. 천사들의 도시라 불리는 방콕에서도 교통 체증이 문제였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 악어들은 늪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몸집이 4미터 이상되는 큰 악어들은 녹조를 뒤집어쓴 채 지상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악어 농장이었는데 코끼리, 침팬지도 있었다. 쇠사슬을 목에 감은 침팬지들은 관람객들 앞에서 조련사들과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코끼리는 유치원생들처럼 노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등에는 노란 망토를 걸친 채 뒷발을 모으고 앉아 재롱을 부렸다. 멀리서 보면 부서진 트럭 같았다. 코끼리는 관객들이 내민 팁을 골로 거둬 조련사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쇼의 시작은 조련사가 물속에 있는 악어의 꼬리를 붙잡아 무대 중앙으로 끌고 오는 것이었다. 조련사는 막대기로 악어를 툭툭 치며 악어 대가리에 손을 집어넣고 머리도 집어넣었다. 쇼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관객들이 박수 치며 동전을 무대로 던졌다. 100바트짜리 지폐를 뭉쳐서 던지는 관객도 있었다. 조련사들은 돈이 날아들 때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태국식 인사를 했다."

(거래처 공장 방문 중 악어농장이 가까이 있다며 잡아끄는 그곳 직원의 안내로 작업복을 입은 채로 잠깐 들러본 것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왔을 때는 가족 모두 '얼빠진 관광객'이 되기도 했다. 수족관이건 동물원이건 동물쇼는 관심 밖이지만 때로는 타인들의 안내로 때로는 어린 딸을 위해 가보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살 수 없는 것처럼 하기 싫은 일을 다 안 하고 살 수도 없다.)

"실롬역 근처의 장기 체제형 레지던스 앞에서는 여자 둘이서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이덕'이란 말을 주고받으며 발길질을 해 댔다. 이덕은 화냥년에 가까운 뜻이었다. 손목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 문신을 한 중년의 서양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희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스티브는 와이의 친구인 쏨과 5년째 동거 중인 50대 중반의 미국 남자였다. 스티브는 갖고 있던 돈이 떨어지자 한국으로 갔다. 쏨을 데리고서 , 스티브는 한국에서 2년 동안 영어 강사로 일하며 돈을 모은 후 다시 방콕을 돌아왔다. 두 사람은 지금도 함께 살았다. 아이는 가지지 않았다. 스티브는 미국에도 자식이 없었다." 

"루카스는 20대 후반의 호주 남자였고, 프레데릭은 30대 중반의 스웨덴 남자였다. 루카스는 젊고 유머 감각이 있는, 망할 자식이었다. 루카스는 방콕에서 1년을 살다 호주로 돌아갔는데, 몇 달 후 시드니로 찾아온, 한때는 애인이자 와이의 또 다른 친구인 나디아를 냉정하게 돌려보냈다.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에."

"프레데릭은 백패커였다. 그는 유스호스텔 직원이었던 메이와 사귀었다. 먼저 구애한 쪽은 프레데릭이었다. 프레데릭은 스웨덴으로 돌아갈 때 메이를 데리고 갔다. 메이는 동거 비자를 받았다. 메이의 목적은 이민이었다. 1년 반 후, 프레데릭과 헤어진 메이는 빈손으로 다시 태국으로 돌아왔다."

"영구 대사관 직원이자 자신의 애인이었던 남자, 개자식. 알렉스는 방콕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이러 농담을 즐겨했다. 런던에는 300가지 종교와 세 종류의 소스가 있고, 파리에는 세 가지 종교와 300종류의 소스가 있고, 방콕은 어떤지 알아? 300종류의 소스와 300종류의 여자가 있지."

"2년이 고비였다. 2년 이상 만나는 태국 여자와 외국 남자 커플은 드물었다. 남자가 방콕을 떠나거나 다른 여자 품에 안겼다. 여자만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와이는 방콕에서 벤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었다. 방콕이 천국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버려지는 것이 더 끔찍했다."

"미국 남자는 너무 노골적이다. 영국 남자는 뒤통수를 친다. 일본 남자는 매너가 좋다 독일 남자도 그렇다. 영어를 잘하는 독일 남자라면 더욱 괜찮다. 한국 남자는 책임감이 턱없이 부족하다. 클럽이나 바에서 비싼 양주를 시켜 놓고 음흉하게 웃고 있는 애들 중 열에 일곱은 한국 남자다. 베트남 남자는 제일 별로다. 여자 등쳐 먹는 놈들이 태반이다, 특히 방콕에서는."

"지난주에 여기서 한 태국 여자를 만났어. 분위기가 아주 좋았지. 영어를 곧잘 하더라고. 그런데 그 여자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아시아 남자한테 손을 흔드는 거야 물어봤어.  누구냐고.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애인?
남편이라고 했어. 놀란 표정으로 괜찮으냐고 그랬더니 아무 문제없대. 일하는 중이니까. 남편은 뭐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벌어 주는 돈으로 먹고산다고 했어."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에서 흔하게 듣는 말이고 자주 보게 되는  성착취.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보도할 때마다 끝마무리에 따라오는 '대부분이 아니라 단지 일부 소수의 문제'라고 하는 면피용·의전용 멘트를 나는 믿지 않는다. 모든 일은 모두의 일이고 모두의 책임일 뿐이다.) 

파타야의 유흥가 "워킹스트리트"

"방콕 시내는 들썩이고 있었다. 송크란 축제에서 물은 안 좋은 기운을 씻어 내고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는, 정화의 의미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총을 들고 다녔다. 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손에 든 사람도 있었다. 건물 위층 창가의 어린아이들도 물총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노렸다. 노점에서 물총을 사면 차가운 물을 담아 주었다. 노점에서는 다양한 가면도 팔았다. 익명의 천사들처럼,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타인을 향해 아낌없이 물을 뿌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을 받으라는 듯. 사람들은 물에 흠뻑 젖을수록 복이 커진다고 믿었다. 물에 젖은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고 감격했다. 거리에는 크고 작은 무지개가 펼쳐졌고 , 코로 물을 뿜어 대는 코끼리처럼 울려 퍼졌다. 방콕은 수채화로 그린 천사들의 도시로 변모 중이었다."

"방콕은 마치 편안한 농담 같아요. 여기 있으니 세상이 평화롭지 않은 게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에요. 송크란 축제 때 사람들이 쏘는 물을 맞으면 축복이 찾아온다고 들었어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안 좋은 것, 더러운 기운을 물로 씻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요.
헛소리
네?
내가 몇 번의 송크란을 경험했을 것 같아? 태국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벌면 개인 운전사도 가정부도 쓰기 어려워질 테니까. 자신들이 불편해지는 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방콕이 농담 같다면 고약한 농담이겠지. 마냥 기대하고 기다린다고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일이면 거리와 광장으로 다시 부자들과 힘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축제의 하루라도 시름을 잊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과 밝게 빛나는 거리가 좋다. 따지고 보면 '바보제'가 아닌 축제가 세상에 어디 있기나 한가 말이다.)

"돈을 지불한 후, 홍은 아웃렛을 나와 에라완사원으로 향했다. 에라완 사원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홍도 처음으로 줄을 섰다. 자신과 린을 위해 기도할 생각이었다. 잠시 후, 홍의 차례가 다가왔다. 홍은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에라완이에요. 코끼리의 신. 마야라는 여자가 이 코끼리 꿈을 꾸고 낳은 사람이 부처님이었어요.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예요."

BTS 칫롬역 근처 "에라완사원"

"방콕은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도시였다. 누구든 머물고자 한다면 머물 수 있는, 숨고자 한다면 숨을 수 있는 도시였다."

"사랑은 서로에게 자유를 주는 거야. 내가 방콕에 온 이유도 바로 그거였어. 무한의 자유를 누리며 사랑을 하는 것."

방콕 호텔 페닌슐라

"나 방콕에 가게 됐어. 그녀가 말했다. (···) 페닌슐라 호텔에 묵은 적 있어?"
"어딜 가나 그 호텔이 최고라며."
"난 그런 거 몰라."
- 제임스 셜터의 단편 소설 「방콕」 중에서 -

방콕에 가고 싶다. 페닌슐라가 아니면 어떠랴. 가서 "삶의 숙제를 대강이라도 해결한 사람"처럼 안락한 썬베드 위에 누워 "망고 디저트 같은 달콤함"을 즐기고 싶다.

* 별도 명기 하지 않은 위 파란색 부분은 소설『방콕』에서 인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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