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태일이>>의 부활

by 장돌뱅이. 2022. 4. 17.

내가 입대하여  막 부대 배치를 받은 졸병이었을 때 그는 말년 병장이었다. 서울대를 다니다가 입대를 했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의 선망을 받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선하고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나에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우연 때문인지 더욱 그랬다. 계급적으로 까마득한 거리가 있는 선임이었지만 그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늘 동아리의 선배처럼 편안하게 말을 건네곤 했다.

한 가지, 그는 사격 훈련에선 완전 낙제생, 군대말로 '고문관'이었다. 과녁에 아예 한 방도 맞추질 못했다. 한 발도 안 맞추기는 스무 발을 다 맞추는 것보다 힘든 일인데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는 사격장에서 그는 매번 체력 훈련을 받아야 했다. '총을 못 쏘면 총알이라도 나르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 훈련을 시키는 지휘관의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고통스러운 체벌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실력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급기야는 총알이 아깝다고 그는 사격훈련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한 번은 야간 보초를 같이 서게 되었다. 나는 왜 사격을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눈이 나빠서"라고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말을 바꾸었다.
"군대야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죽이는 기술은 배우고 싶지 않아서 ······ .
혹시 무기를 거부하는 특정 종교의 신도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사람 죽이는 기술?'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반짝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전태일이라고 알아?" 
입대 전 친구들로부터 들은 게 있어 기억나는 대로 말하자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진지하게 어려운 말을 덧붙였다.
"자신과 주위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끊임없이 투신하는 전태일의 뜨거운 사랑. 
우리의 삶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지고의 가치 아닐까?" 

그와 했던 동거는 짧았다. 읽던 책 몇 권을 내게 물려주고 그는 제대를 했다.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내가 제대 한 뒤에도 만남이 이어졌다. 그 뒤 내가 먼 지방에 직장을 잡고 그가 이사를 가면서 서로 연락이 끊어졌다. 87년 무렵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 한 노동 관련 자료에서 그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부평 공단에서 노조일을 하다가 해고되어 복직 투쟁 중인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말했던 '전태일의 지고한 가치'를 삶에 가꾸며  살고 있는 듯했다.

친구들의 말과 몇 장의 복사물을 통해 대강만을 알던 전태일을 83년에 나온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통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의 참혹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친목회를 만들고,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해당 관청과 언론사에 알리고,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써보았으나 모든 노력이 벽에 부딪히자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의 불사르면서 자신의 몸도 바쳤다.

나는 이천년 전 베들레헴의 더러운 말구윳간에서 태어났으나

지금도 그대의 비참한 슬픔을 위하여 가난한 시골집에서도 태어납니다
나는 사랑을 위해 그대 생애 속으로 들어왔으나
좀더 큰 사랑을 위하여
그대 생애의 순간 속에서
태어나고 괴롬받고 또 부활합니다

- 김정환의 장시(長詩), 『황색 예수전』 중에서 -

오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냉담자인 나로서도 예수를 생각해보게 되는 일 년 중 드문 하루이기도 하다. 
부활 이전에 죽음이 있었고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다. 부활은 청년 예수의 거침없는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함께 기억하지 않으면 단순한 이적(異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태일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기독교적 신앙이 구현하려는 완전한 인간성에 가장 밀접한 삶을 살았다. 삶과 죽음의 전 과정을 통해 다른  생명을 살리고 잠든 사회를 깨웠다. 그리고 친구들과 군대에서 만난 선임 병장과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배가 고프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목이 마르다"는 십자가 위 예수의 말과 겹쳐진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태일이』는 맑고 투명한 색채의 그림에 새겨진 잔인한 현실이었고 다시 보아도 뭉클해지는 전태일의 지고한 삶이었다. 1995년에 만들어진『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함께 영화가 불러내는 그의 기억이다. 
기억은 삶에 관여하고 위로하고 또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기억은 부활의 다른 모습이라고 믿는다. 

전태일이 분신한 장소에서 멀지 않은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는 전태일의 반신상이 서 있다. 2005년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세운 것이다. 그 일대 전태일거리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해 만든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아내와 나는 거기에 "우리가 서있는 세상이 당신의 사랑 위에 있음을 믿으며"라고 새겨 넣었다.
그렇게 믿는다. 믿어야겠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몸이 다리가 되어  (2) 2022.04.20
변치 않는 사랑  (0) 2022.04.19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0) 2022.04.16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0) 2022.04.11
펑펑펑  (0) 2022.04.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