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지인과 길게 전화 통화를 한 후 내게 내용을 말해주었다.
처음엔 늘 하는 대로 소소한 가정사를 나누었는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서 여느 때완 다르게 정치 상황으로, 한 달 전 대선으로 옮겨 갔다. 정치 문제는 개인 간에 조심스러운 사안이라 그동안 둘 사이에는 대화에 올리지 않던 주제였던 것이다. 지인은 대선 결과에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대선 개표 중계를 보다가 급기야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지인은 자신의 암담한 심정을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가 (지지 후보가 다른 듯) 어정쩡한 반응에 답답함이 가중되어 있는 상태로 보였다. 그러다 아내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인하자 폭발하듯 감정을 쏟아 내었다. 대선 이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보는 인터넷 언론사에 적지 않은 금액의 후원금을 보냈다고도 했다.
2016년의 촛불정국에서도 그랬거니와 평소 조용하고 침착하던 지인의 성품으로 볼 때 가히 파격적이고 놀라운 적극성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내는 부정한 시대'라고 한, 군부독재 시절 어느 분의 법정진술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완 '부정한 시대'의 의미가 다를 수 있고,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들은 펄쩍 뛸 지도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수영, 「사랑」-
*1961년 발표
시인은 말하는 4.19의 '변치않는 사랑'과 5.16으로 인한 좌절, 내게는 촛불혁명과 올 대선이 그렇다. "금이 간 너의 얼굴"에 반성과 성찰은 필요하다. 하지만 '니탓이오 니탓이오'의 반복은 87년 대선 이후 격렬했던 '비판적 지지'와 '독자후보 지지' 간의 논쟁처럼 생산적인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것 같다. 가진 게 투표권 한 장뿐인 우리들은 서로 소통하며 위로를 나누는 게 먼저다. 그리고 아내의 지인처럼 '정신 바짝 차리기 위해' 자신의 할 일을 찾는 게 우선이다.
"아픔과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겠지만 그러는 사이 60개월 중에 벌써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가. 시간이 흐르는 게 위안이고 힘이 될 때도 있다."
얼마 전 아내에게 건낸 이 말을 지인에게도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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