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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온몸이 다리가 되어

by 장돌뱅이. 2022. 4. 20.


휴일이면 한강공원에는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장실 앞에는 매일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여자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고 남자 화장실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한두 명뿐이다. 

같은 면적에 같은 수의 화장실이라는 형식적인 '평등(Equality)'은 적용되었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고려한 실질적 '형평(Equity)'은 만들지 못해서 초래된,  익숙하고 오래된 풍경이다. 여성들의 불편함은 남자와 신체적 차이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인위적인 이유에서 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미국 사회운동단체의 아래 그림은 그 개념을 쉽게 보여준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 그림이 제시되었을 때 한 후보는 형평의 노력과 함께 아예 장벽을 없애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와 관련한 짧은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장애가 개인적인 불행한 신체 손상의 문제이기에 앞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차별과 장벽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즉 사회 구성의 주체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여성 화장실 문제처럼 제도적·문화적 편견과 실체에 갇혀,  얼마나 유보되고 있는가 하는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야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가 있었다. 이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늦어지면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정당의 대표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시위를 "매우 비문명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인식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작동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국가 운영의 한 책임자라 할 유력 정당의 대표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시민의 인권 문제를 시민대 장애인,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란 구도로 갈라치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훈계를 늘어놓은 것이다. 파업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마다 '시민의 볼모로 잡는다'는 수식어는 이들에게 거의 정형화되어 있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다수의 동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을 보장하는데 있겠지만 소수의 의견에 다수가 귀를 기울일 때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는 성경의 말씀은 그 한 마리의 상실에 대한 바른 성찰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실천을 통해  99마리의 존재도 온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 김기택, 「다리를 저는 사람」-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며 걸어갈 때 
온 사회도 함께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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