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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우리가 혹하는 이유』

by 장돌뱅이. 2022. 5. 3.


인터넷과 다양한 SNS의 발달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핸드폰만 켜면 새롭고 따끈따끈한 실시간 정보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과 왜곡, 비판과 비방, 광고와 '내돈내산'을 구별하기 힘들고 그럴 틈도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과학적·이성적·합리적 판단력이 우리에게 더 절실히 요구된다.

"사회심리학이 조목조목 가르쳐주는 개소리 탐지의 정석 "이라는 재미있는 부제가 붙어 있는 『우리가 혹하는 이유』는 '개소리'와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주제로 한 책이다. 영어 제목은 『THE LIFE-CHANGING SCIENCE OF DETECTING BULLSHIT』였다. 지은이 존 페트로 첼리 JOHN V. PETROCELLI는 미국의 웨이크포리스트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거짓말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말하는 것"이고, 개소리는 "진실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한다. 또 "
거짓을 말하고 그 사실에 신경을 쓴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숨기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현실을 왜곡해 묘사하고 거짓말을 기억하는" 반면, "개소리꾼은 실제로 자신의 개소리를 믿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단어의 정의와 의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 거짓말과 개소리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카더라 통신'이라는 가짜뉴스와 유언비어, 작은 사실을 진실의 전부인양 침소봉대하거나 더 큰 실체적 진실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축소하는 행위 등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의미에서 개소리와 거짓말을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 없이 같은 의미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혹하는 이유』는 내용이 개소리의 발생에 대한 사회구조적 접근보다는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논리 전개가 병렬적이어서 산만한 느낌은 있지만 ,풍부한 사례들로 개소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한다.  
 


개소리를 "꾀는 파리"에 따라 나누는 지수는 재미있다.
그 각각의 지수에 적합한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풍부하게 제공하여 주었다.

트럼프가 자신의 '취임식 때  연설을 시작하자 내리던 비가 멈추고 연설이 끝나자 비가 다시 시작했다'고 한 주장은  사실과 부합되지는 않지만 비교적 해롭지 않으므로 '파리 한 마리' 등급이다.

트럼프가 '취임식 때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고 사실적 정확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파리 두 마리'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2020년 4월 23일, '소독약을 체내에 주사하거나 표백제를 섭취하는 것이 코로나 치료에 획기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과학과 의학을 향한 경박한 태도를 부추기며 사회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파리 세 마리에 해당된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거부하는 것이 마치 자유 수호 투쟁의 상징인 것처럼 행동한 무리들의 주장도 역시 '세 마리'  등급의 개소리다.


 와인 판매업자가 비싼 와인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던지는 "랍스터에 어울리는 와인과 피자에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표현에 속지 않거나  고기 성분 표시인 "살코기 함량 85% 고기와 지방 함량 15%"가 사실은 조삼모사처럼 같은 의미임을 깨닫는  순발력도  생활에서는 필요하지만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파리 세 마리 등급'에 해당되는 개소리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적으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이성적으로 생각한 결과라고 믿지만, 소비자 광고, 정치 선전, 소문 등에서 거짓 주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 진실일 리 없는 허황된 말을 반복하고, 이를 주류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퍼뜨리면 유권자들은 거짓을 사실로 믿기 시작한다.

"2016년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음모론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한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의 메일함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피자가게를 거점으로 인신매매 및 아동 성매매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발빠르게 온라인에 퍼뜨렸다. 이 개소리에 심취한 에드거 웰치라는 사내는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열정에 사로 잡혀 피자가게에 들어가 총을 발사했다. 물론 그 피자가게에는 학대를 당하는 아이도 그런 정황도 없었다."

"속아 넘어가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진실이 아닌데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인데 믿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덴마크의 철학가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국내외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숱한 개소리의 실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고한 군인에게 적국 스파이 혐의를 씌웠던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 그렇고, 우리 사회 부정한 권력이 저질렀던  많은 간첩조작과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식의 고문 사건들이 그렇다. 80년 대 북한이 금강산 댐을 만들어 서울을 수장시키려 한다는 전국적인 공포감을 조장하여 만들어낸 이른바 '평화의 댐'은 가히 개소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한결 같이 정치인들이 만들어내고 언론들이 노래를 부르고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그룹들이 추임새를 넣는 모양이었다. 개소리의 카르텔이었다.

책은 우리 사회의 개소리꾼들의 주장에 대해 대해  "왜?"라고 묻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본 적 있나요?" 같은 일반적인 질문 구조를 고수하라고 충고한다. "왜?"라는 질문에 개소리꾼들은 이론적이거나 철학적인 논거를 제시하면서 증거를 누락시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질문에 앞서 개소리꾼들의 말만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고 덧붙이고 싶다. '불교 승려들이 숲을 지날 때 혹 밟을 지도 모르는 풀벌레들에게 미리 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방울을 달고 천천히 걷는다는 말에 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밟아버렸던가' 하는 말은 거룩한 고승이나 성자의 말이 아니라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의 말이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은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600만여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붙어 있던 표어였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이번 대통령 당선자의 말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가 걸러버린 5공이라는 구시대의 상징적인 퇴물을 취임식에 초대하는 그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통합은  기계적인 합집합이 아니라 진실이 아닌 것을 빼내는 차집합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수식어의 포장을 걷어내고
과거부터 어떤 행동을 해온 집단(개인)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은 역사일 수도 있고 개인의 내력일 수도 있다. 거기에 '무엇을? 어떻게? '나  '왜?'라는 질문까지를 더할 때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개소리도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봐도 좋갰다.
"우리는 세상의 실제 모습에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 세상의 모습에 반응한다. 데이터를 토대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면 현실 세계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확신해야 한다. 그러려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환상, 즉 위안을 줄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현실 감각을 왜곡시킬 수 있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원하더라도 사실이 아닌 것은 결코 진실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편견을 갖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이러한 편견에 맞서서 자신을 보호해줄 유일한 안전장치가 과학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찾고,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고, 자신이 진실이기를 희망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진실로 알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각자 이행해야 하는 책임이다. 개인 차원에서 개소리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개소리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 벌이는 집단적 투쟁에도 기여한다." 


* 위 글 중 " " 부분은 『우리가 혹하는 이유』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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