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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메두사호의 첫 출항

by 장돌뱅이. 2022. 5. 10.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1816년 프랑스의 대형 군함 메두사호는 첫 출항 길에 아프리카 세네갈 해안에서 침몰했다. 모래톱에 부딪혀 좌초한 것이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4백여 명이었다. 선장과 고급 장교귀족신흥 부르주아지 등 250명은 구명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계급과 신분이 낮은 나머지 147명은 난파한 배에서 뜯은 나무로 만든 뗏목으로 옮겨 타야 했다. 뗏목은 밧줄로 구명선에 연결했다. 그렇게 해안까지 끌고 갈 계획이었지만 쉽지 않았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선장은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끊어버리고 달아났다.

나침판과 지도도 없이 망망대해에 버려진 사람들의 표류 과정은 생지옥이었다. 바닷물에 휩쓸려 떨어져 나가는가 하면 조금 더 안전한 안쪽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져서 서로 죽이기도 했다. 식량이나 물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오줌을 받아먹고 심지어 피를 빨고 인육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표류 이틀 만에 숫자가 반으로 줄었고 7일 후에는 28명만이 살아남았다그리고 13일간의 표류 끝에 구조되었을 때는 15명만이 남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중 5명은 이송 도중 사망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표류 과정에서 겪었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뗏목에 있던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비극이 뿌리가 프랑스 왕정의 부패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강대국들에게 아프리카 식민지는 막대한 부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쓰고 식민지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25년간 배를 탄 적이 없는 퇴역 군인이었던 메두사호의 선장도 그렇게 선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애초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암초에 배를 걸리게 하고 난파하게 만든 것도 그런 선장의 무능 때문이었다. 부패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왕정의 권위가 위협받자 프랑스 정부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는 쪽으로 힘을 기울였다.

메두사호의 참극이 일어난 지 3년 후인 1819년, 파리 살롱에  처음 전시된 제리코의 그림「메두사의 뗏목」에는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 그리고 아비규환의 와중에서 희망과 용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메두사호의 선장에서 보듯 지도자의 부패와 무능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부패한 세상일수록 돈과 권력은 긴박한 순간에도 구명선과 뗏목, 즉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강력한 기준이 된다.

오늘 어느 항구에선가 첫 출항을 떠나는 배에는 그런  부패한 바탕과 잔인한 기준이······
더 이상 실려있지 않기를······
!
우려는 높고 기대는 낮지만 그래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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