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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장돌뱅이. 2022. 7. 24.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줌(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책모임 "동네북"에서 7월의  책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선정했다. 나로서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는 책이었다.  막연히 물고기 - 오염 - 미세 플라스틱 등을 연상하며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어 제목이 『Why Fish Don't Exist(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여서 그랬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가장 암울한 날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신념의 과학자에 대한 전기일까 생각했다가, 점차 그것이 오만한  인간이 학문을 빙자하여 저지른 행위에 대한 '그것이 알고 싶다'식 폭로 내지는 비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세속적 성공과 도덕적·학문적 실패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에 대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였음도 깨닫게 되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어류학자였다. 그는 1870년대 이후 미국의 전역을 광범위하게 지역을 탐사하여 1085 속 (屬),  2,500 종(種) 이상의 어류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폭넓게 분류했다고 한다. 그는 1891년  캘리포니아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 되어 1913년까지 재직했다. 가히 학문과 사회적 명성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그 세속적 성취의 내용과 이면이었다.

그는 자신이 관찰하는 생물에게서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 했다. 어떤 생명의 '나쁜 버릇'이 그 종을 퇴보 또는 더 나쁜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증거로 보았다. 일테면 멍게나 따개비 같은 한자리에 고착되어 살아가는 생물들이 한때는 물고기나 게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갖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온 결과 더 게으르고 더 약하고 더 단순하며 더 지능이 떨어지는 형태로 "퇴화했다"고 믿었다. 그에게 멍게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주머니일 뿐이었고 게으름에 대한 경고이자 교훈일 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으로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생명체의 특징들은 사실 종 전체나 생태계에는 이로울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기린에게 경쟁자에 대한 우위를 갖춘 것은 그 거추장스러운 목이었고, 바다표범이 심한 추위에도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움직이지 못할 만큼 무거 워보이는 체지방 덕분이었으며, 대다수가 생각할 수 없는 발명과 발견, 혁명을 이루게 한 열쇠는 확산적 사고를 하는 뇌인 것이다. 크건 작건 , 깃털이 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다양성은 모든 존재의 본질이고 이유이고 목적이다. 거기에는 어떤 우열이나 순위, 계급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생명체의 외양에 주목하지만 자연은 외양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위험한 것은 인간의 눈에서 비롯된 오류 가능성,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이다.  인간의 지력으로는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을 우리는 공경해야 하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떤 식으로든 장기적으로 한 생물에게 도움을 주면 그 결과 신체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쇠퇴하게 된다'는  자연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오해를 가졌다. 그는 이런 논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지닌(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새로운 인간의 종"으로 퇴화하고 있는 증거라고 걱정했다. 그런  '부적합자'들에게 베푸는 자선과 호의는 인류의 쇠퇴를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가난, 방탕, 게으름, 문맹, 범죄성 등도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혈통의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나쁜 유전자는 '습지의 물을 말려 버리는 것처럼 박멸할' 수 있다고, '부적합자'들의 생식기를 그냥 잘라내는 방법으로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의하고 저술하였다.  지극한 열성과 과학적 권위에 소명 의식까지 더하여 이른바 우생학(eugenics) 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생각은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자,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 유전적 불구자들'을 자선의 명목으로 한데 모아 불임화하자는 정책의 토대가 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전역에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여 불임화가 합법적으로  6만 건 이상 실행되었다. 공공복지의 이름으로 끔찍한 인권 유린이 자행된 것이다. 우생학 불임화법이 폐지된 지금도 강제 불임화는 전국에서 여전히 '조용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인간의 광기 이외의 말로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지금도 여전한 인종차별이 그렇지 않은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 』는 2차대전 시기에 그런 인간의 광기에 삶을 유린당한 순박한 농부의 이야기다. 요한 모리츠는 유대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수용소로 압송된다. 자신은 루마니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우연히 헝가리로 탈출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고문을 당한다. 헝가리 정부는 그를 독일에 전쟁 노무자로 팔아버린다. 그곳에서 인류학 연구가인 독일군 장교가 모리츠의 골상이 순수한 독일 혈통임이 분명하다고 인정하여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게 된다.  모리츠는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연합국 진영에서는 그를 전범으로 분류하여 투옥시킨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 가족과 재회를 하게 되지만 18시간 만에 다시 그는 냉전으로 동유럽인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져 감금된다.  게오르규는  『25시 』를 통하여 모리츠를 개별적 존재가 아닌, 그에게 덧씌워진 '카테고리'의 한 부분으로 보는 광기를 고발한 것이다.

교회도, 국민도, 국가도, 대륙도, 단체나 카테고리에 의해 인간을 구할 수는 없어. 오직 개인으로서의 인간만이 종교나 인종이나 그가 속한 사회적 또는 정치적 카테고리의 여하를 막론하고 구원을 받게 되네. 바로 여기에 사람은 결코 그가 속한 카테고리에 의해서 판단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 카테고리는 인간의 두뇌가 산출한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악마적인 착오야.


광기는 히틀러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히틀러가 최초의 강제 불임화법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의 한 우생학자는 "독일인들이 우리를 이기고 있다"고 부러움 섞인 우는 소리를 했다. 실제로 위 글에서 보듯 미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무려 50년간 같은 법이 시행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도 비슷했다고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과 "자기 길을 막는 모든 걸 뭉개버릴 수 있다고 믿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더해졌을 때 광기는 증폭된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아도 '국익을 위해서'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을 때 가장 구리고 메스꺼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일제 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 수용하고 불임수술과 노역을 강요한 이른바 '당신들의 천국'이 그렇고, 우리의 현대사에 등장한 군사 정권들이 저지른 잔인한 만행들도 모두 명분은 '국익을 위해서'였다.

광기는 사회 기득권층의 자기 방어 논리인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선 인간을 분류하고 가른다. 여자와 남자, 청년과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열등생과 우등생, 부자와 가난한 자, 경상도와 전라도, 외국인과 내국인,  흑인과 백인의 카테고리를 씌운다. 총체적인 시각을 상실한 채 파편화된 객체들은 광기에 무기력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이 자기 갱신의 긴 과정임을 인식하고 내가 믿어온 생각과 신념을 부단히 자기비판과 반성의 무대 위에 세우는 일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겸손함을 강조하는 대목도 주목해서 읽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은 정확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 없는 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일이다.

*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총장으로 지냈던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 대학은 그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고 결정했다고 책은 말미에 전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대학내에 있던 그의 동상도 함께 치워졌다고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연한, 사필귀정이고 인과응보다.그러나 그것으로 사태를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그렇듯 그가 불러온 인간적·사회적 타락과 함께 그의 학문과 행동이 백 년 가까이 칭송되어온 토대와 근거에 대해서도 냉철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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