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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병실에서 20

by 장돌뱅이. 2022. 9. 6.

바실리 칸딘스키, 「하늘색」,1940


퇴원.
완치가 아니라 집에서 재활을 하며 통원 치료를 하기로(하라고) 했다.
회복의 시즌1이 끝나고 바야흐로 시즌2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집에 오니 좋다.
병실에 깔린 묵직한 기운이 사라지고 24시간 착용해야 했던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 공기도 달고 가볍다.
옆자리를 의식해서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할 필요 없고,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노트북으로 옹색하게 보던 넷플릭스를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 원래의 일상 - 밥 먹고, 음악을 듣고, 커피와 차를 마시고, 집 주위를 걷고,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보는 -의 대부분이 저절로 회복되었다. 다만 걷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작아지는 건 당분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넷플릭스 시청물 선택에도 변화가 있다.
입원 전에는 세계 각국의 외화를 즐겨봤다면 병원에서는 우리나라, 그것도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락물을 위주로 보고 있다. 그중에 청춘 남녀들이 모여서 며칠간 숙박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이성의 짝을 찾는 프로가 있었다. 출연자 중의 한 사람이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답을 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바람을 안 피우는 사람? 그러면 '나만'을 사랑하는사람일걸까? 아니면 화를 내지 않고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 하는 사람? 그냥 매사에 '나'의 의사와 결정을 따라가는 사람?······ 제길, 그런 사람이 어딨어? 있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처님이지."
아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엔 그게 어떤 사람이냐 하면······ 당신이 나한테 하듯이 해주는 사람!"

아내는 가끔씩 예상치 못한 답변으로 나의 말문을 즐겁게 막는다.
"충성!"
그럴 때마다 나는 부대에 막 들어온 신병처럼 거수경례를 붙인다.


*퇴원과 더불어 20편을 이어온 "병실에서"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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