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은 했지만 아직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거실로 침대를 옮겨 놓았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시원한 하늘을 누워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가로막는 물건들도 치웠다. 병원의 병실이 '이코노미 클래스'라면 집은 '비즈니스 클래스'라고 아내가 웃었다.
아내의 불운한 사고 뒤 이런저런 잡다한 걱정거리들이 별안간 사라진 듯하다. 오직 한 가지, 아내의 회복으로 집약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의 걱정거리들이란 게 별것 아니었단 뜻도 되겠다. 게다가 아내의 회복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니 사실 걱정이랄 게 없는 셈이다.
"내 불꽃은 하늘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 나 걷는 거 잘하잖아."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SOUL)』에 나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그건 목적(불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거"라고 냉소하지만, 삶을 이끌고 지탱해가는 '불꽃'은 거창한 꿈이나 소망이 아니라 하늘보기나 걷기 같은, 아니면 맛난 기억을 담은 피자와 빵 한 조각, 엄마가 쓰던 실감개, 노랗게 물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 긴장했을 때 누군가 건네준 사탕 하나 같은, 평범하고 하찮을 수도 있는 순간을 가슴에 담아두는 데서 시작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사는 건 짜릿한 쾌감이나 성취, 심오한 의미를 담기에 앞서 그냥 사는 일이므로.
이제 '비즈니스 클래스'의 침대에서 하늘보기는 이루었으니 아내와 내게 남은 '불꽃'은 걷기 뿐이다. 아니면 '하늘을 보며 걷기'이거나.
옥상에 벌렁 누웠다 구름 한 점 없다 아니, 하늘 전체가 구름이다 잿빛 뿌연 하늘이지만 나 혼자 독차지 좋아라! 하늘과 나뿐이다 옥상 바닥에 쫘악 등짝을 펴고 누우니 아무 걱정 없다 오직 하늘뿐 살랑살랑 바람이 머리카락에도 불어오고 발바닥에도 불어오고 옆구리에도 불어온다 내 몸은 둥실 떠오른다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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