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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제주 함덕 7

by 장돌뱅이. 2022. 10. 25.

나 홀로 매일 하는 아침산책.
동네 골목길을 걸어서 함덕 서쪽 바닷가까지.



바람은 어제보다 세찼지만 냉기가 실려있지는 않았다. 바다는 거세게 출렁였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식사는 간밤에 쪄 두었던 밤으로 했다.
그리고 아내와 커피와 음악, 책으로 오전을 보냈다.

오늘은 아내가 사고를 당한 지 2개월 10일 만에, 드디어, 마침내, 대중교통을 타보는 날이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조천우체국까지 9개 정거장 이동.
버스가 달리면서 터덜거리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는 오케이.

조천우체국 근처 백리향에서 고등어구이와 갈치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덤으로 나왔다. 요샛말로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었다. 물론 맛도 좋았다.

그득해진 배 때문에  뒤뚱거리며 바닷가 조천진성 위에 있는 정자 연북정(戀北亭)을 찾아갔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였다. 북쪽 바다를 향해 열린 조천포구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부임하거나 이임을 하던 포구 중의 하나이다. 유배객들도 이곳을 통해 왔을 것이다.

그들은 연북정에서 북쪽, 즉 한양에서 올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그곳에 있는 임금에게 충정의 마음을  보냈다. 제주는 그들에게 권력 회복을 위해 거쳐가는 디딤돌이거나 빨리 벗어나야 할 '천형'의 섬은 아녔을는지. 먼 북쪽의 권력 기상도와 상관없는 도민들은 오랜 세월 '육지것들'의 가혹한 가렴주구에  시달려왔을 뿐이다. 그들의 '연북'을 근처 비석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관리들의 (셀프?)공덕비만큼이나 조금은 비아냥스러운 감정으로 대하게 되는 이유다. 

(나중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을 보니 이런 나의 생각이 조금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럴 수 없는 일이다. 귀양살이 온 죄인인 주제에 유배객이 어떻게 군사시설인 망루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았겠는가. 연북은 그런 좁은 뜻이 아니다. 이 고을 이름이 조천인 것, 망루가 연북정인 것, 또 제주목 관아에 망경루(望京樓)가 있는 것 등은 모두 다 조선시대의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 임금의 존재와 권위에 대한 존경의 뜻한다. 조천이란 하늘(天), 또는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한다는 뜻이고, 망경루는 서울을 바라본다는 뜻이며, 연북에서 북(北)이란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통한다. 조선시대는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구조였음을 말해주는 거의 보통명사에 가까운 이름들이다. 조선시대에 연북정을 찾아와 간절한 마음으로 북쪽을 바라본 사람은 아마도 제주목사, 제주판관, 정의현감,대정현감 등 육지로 불려가기만 기다리는 관리들이었을 것이다.)

조천만세동산 입구에는 제주의 3대 항일운동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3대 항일운동은 1918년 법정사 스님과 신도들이 중문 주재소를 습격, 방화한 항일투쟁, 3·1운동 당시 조천 지역의 만세운동, 1931~1932년에 걸친 구좌, 성산, 우도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말한다. 공원 안에는 3·1운동기념탑과 애국선열기념탑 같은 거대한 조형물이 있고 제주항일기념관이 있었다.

강요배 「잠녀항일항쟁」

당연하게도 세상의 어느 한 곳도 돌아보면  저절로 당연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의 포기할 수 없는 소망과 결단, 헌신과 희생이 가꾸어 온 현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들어 윤석열 정권이 보인 굴욕적인 대일 행보는 우려스럽다. 22일 언론은 다음과 같은 해괴한 소식을 전했다.

한일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소송 문제의 해법으로 패소한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한국의 재단이 대신 내는 방안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고 23일 교도통신이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강제징용 노동자를 지원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재단이 일본 기업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마치 사기와 폭력을 행사한 이웃 불량배는 고개를 쳐들고 사과조차 않는데 당한 쪽에서 서둘러 찾아가 '우리 형제들끼리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가깝게 지냅시다'라고 매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 다음 문구는 더 황당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으로서는 용인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대납을 하더라도 수용 여부는 일본이 쥐고 있는 듯한 고압적인 자세다. 역사 청산의 문제를 민간인의 채권채무 문제로 바꾸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 인격을 정부가 나서서 스스로 포기하는 꼴 아닌가. 인격을 포기하면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를 믿고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어떤 정해진 일을 공표하는 전형적인 순서가 아닐까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앞선 글에서도 썼듯, 정치적으로 많은 '구린' 일들이 처음에는 '그럴 일 없다'는 부정으로 시작하여, '논의한 바 없다'거나 '아는 바 없다'로, 그리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NCND : Neither Confirm Nor Deny)'로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는 이유로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한일 정부는 오는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간 대화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 문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혹은 '선린외교'라는 명목으로 확정이 되는 과정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참조 : 연합뉴스 2022년 10월22일 자 : https://www.yna.co.kr/view/AKR20221023057051073?input=1179m )

점심에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배가 꺼지지 않아 저녁은 포도로 대신했다.
식사 담당으로선 한 끼를 날로 먹는 가뿐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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