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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한강 걷기

by 장돌뱅이. 2023. 1. 13.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들이
막막해질 때면
저무는 강둑에 서서
해가 지듯, 저물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온갖 스러지는 것들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안이 비었으니
내게 와 머무는 저녁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적요한 세상의 가슴을 적시며
나도 강처럼 흘러
어디엔가 닿아 있으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달맞이꽃이 드문드문 필 무렵 나는
적막의 푸르른 빛깔과
막막한 하늘을 집으로 삼고
서둘러 돌아가는 새들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 염명순, 「저물녘」-


봄이 온 것처럼 푸근한 날씨가 계속된다.

눈에 띄지 않아도 강변 언덕 어느 곳에는 뽀얀 버들가지가 움터 있을 것만 같다.

자주 걷는 한강이지만 만나는 풍경은 걸을 때마다 다르다.
걸으면서 잠시 일상의 고민과 번잡함을 거두고 그런 우연한 풍경들을 눈에 담는다.
나는 더 멀리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만나 함께 집으로 온다.
저무는 하늘엔 가끔씩 저녁새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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