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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다가오는 모든 시간은 신비롭다

by 장돌뱅이. 2023. 1. 12.

미국 생활을 할 때 아내와 자주 여행을 떠났다.
땅이 넓고 월급쟁이 생활이다 보니 시간 절약을 위해 야간운전은 필수였다.
밤이 늦으면 아내를 뒷좌석 잠자리로 보내고 혼자서 운전을 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가끔씩 지나가는 큰 트레일러를 빼곤 오직 어둠뿐인 길이었다. 운전모드를 크루즈 기능으로 바꾸고 나면 브레이크와 액셀 사이를 오가던 발도 심심해져 오직 멍하니 앞만 응시하고 달렸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의도하지 않고 상상하지도 않던 낯선 이곳에 와서 이렇게 밤운전을 하고 있는가' 하는 신비로운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신(神)이란 존재를 처음 생각해 본 것도 그 길 위에서였다.
신은 일상의 여기저기에 '시어머니처럼 쪼그리고 앉아 잔소리나 하는 노쇠한 망령이 아니라 우주와 세계와 미래를 채우는 청춘의 법'일 수도 있다는·
·····
삶을 좌지우지하는 많은 일들 속에는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닌, 뜻밖의 이별과 슬픔과 사고도 있을 터이지만 그 모든 것을 신비로움 이외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이전 글 참조 : 
그곳, 요세미티 YOSEMITE)

 

그 곳, 요세미티 YOSEMITE

야간운전 미국에서 여행을 하면서 야간출발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다소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월급장이에게 주어진 주말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

jangdolbange.tistory.com

작년 이 맘 때쯤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림동호회에 든 일도 그렇다.
처음 가입 권유를 받았을 때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양했었는데 어찌어찌 결국 함께 하게 되었다.
정말 몇 차례의 우연에 우연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결과였다.
그 우연 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시간은 그래서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그림을 위해 새로 구입한 물감과 펜.

직장에서 물러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는 세상의 모든 분야엔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 활동에 가면 사진에, 글을 쓰는 곳에 가면 글에, 운동 모임에 가면 운동에, 세상 도처엔 '강호의 고수'들이 흔했다.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이 그만큼 세상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동호회 '고수'의 어반스케치

그림동호회도 그렇다. 나를 빼곤 회원 모두 쟁쟁한 실기 능력과 이력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스케치북, 물감, 붓 등의 그림 도구와 소재 선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말 한마디가 초보인 내겐 새로운 세상이고 '명심보감'이다. 모임에 갈 때마다 한바탕씩 배우고 온다. 

그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고등학교 이후 사십여 년만에 수채화를 그려보았다. 김영갑의 사진을 보고 제주 풍경을 흉내낸 것이다.  바닥의 검은땅을 빼면 어디에도 제주의 모습은 없다. 기초가 없으니 내가 봐도 초보의 티가 역력하다. 밑그림, 채색과 붓놀림, 색 배합의 모든 단계가 어려웠다.

하지만  애초부터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없는 나로서는 서투름과 한가로움도 즐거움이었다. 당분간 신비로운 우연이 가져다준 이 인연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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