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나의 늦은 귀가

by 장돌뱅이. 2023. 7. 13.

손자저하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틀 전 딸아이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 아내가 혼자 집으로 가야 했다.
저하들은 할머니와 만나자마자 '빠이빠이'를 해야 하는, 전에 없던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집에 있다


아파트 문
열리기 전
걸음이 빨라진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있는 집에
올 때처럼

- 나기철, 「엄마」-

2박3일 동안 떨어져 지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 시를 떠올리다가 혼자 겸연쩍어지고 말았다.
젊었을 적 나는 늦은 귀가로 어머니와 아내가 오래 기다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학생 아들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셨고 결혼한 뒤로는 아내가 회사원 남편을 기다렸다.
어떨 때는 늦은 밤에 사람들과 함께 집으로 몰려와 마지막 술판을 이어가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회사일을 핑계 삼았지만 어머니도 아내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혼자 지내는 동안 아내는곳곳에서 나의 기척을 느꼈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다가 문득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내가 걸어 나올 것 같은 건넌방 문을 바라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예나 이제나 아내는 내게 고운 사람이다. 
나는 더욱 겸연쩍어졌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토너(Stoner)처럼  (4) 2023.07.30
아내와 나의 여름 음식  (0) 2023.07.29
마지막으로 깨달은 뒤에는···  (0) 2023.07.11
초복 복달임  (0) 2023.07.11
책『지리의 힘』  (0) 2023.07.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