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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스토너(Stoner)처럼

by 장돌뱅이. 2023. 7. 30.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던 윌리엄 스토너는 농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가 진로를 영문학으로 바꾼다. 부모님의 기대와는 다른 선택이었지만 부모님은 스토너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스토너는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학업을 계속하여 교수직을 얻는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 결혼은 한 달도 안 돼서 실패임을 깨달았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조차 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녀(이디스)는 거의 두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었고, 윌리엄(스토너)의 큰 집에는 그와 딸, 둘 뿐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집이 팅 빈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익숙해져서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그는 자신이 몇 년 만에 최고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든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는 이디스를 생각할 때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숨길 필요가 없는 조용한 후회가 느껴졌다.

파탄의 책임은 이디스에게 있어 보이지만 스토너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대신 인내와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딸 그레이스와도 부인 이디스의 비정상적 집착으로 인해 점차 소원해지던 끝에 딸이 떠나고 만다. 

동료이자 제자인 캐서린와 나눈 잠깐의 위로는 불륜이라는 도덕적·사회적 구속을 벗어날 수 없어 고통 속에 헤어지게 된다.
사회적으로 종신교수의 지위는 확보했지만 사이가 나빠진 학과장의 횡포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원리원칙을 지키려던 그의 우직함 때문이었다.  그는 학자로서 대단한 성취는 이루지 못했어도 책을 쓰고 열심히 강의를 하면서 일생을 살았다. 학생들의 반응은 때로는 높고 때로는 낮았다.

스토너의 삶은 기대와 선택, 조화와 갈등, 평온과 고통이 교차했다. 커다란 성취도, 극적인 반전도, 갈등과 맞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거나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도 없이 그저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는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삶을 반추하며 그가 오직 그 자신으로 살아왔음에 스스로 자족에 이른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갈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생생해지려고 힘을 모으고 있었지만,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더니,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고 했던가.
산다는 건 불완전한 세상 속에 불완전한 인간이 조금씩 그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태어나는데 이유가 없듯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이나 누구 때문이 아니다.
그냥  숙제를 하듯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스토너처럼.  

미국 소설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장편『스토너(Stoner)』는 원래 1965년에 출간되었으나 40년 만인 2000년 대에 들어 다시 주목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영상독서 모임 "동네북"의 추천도서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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