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은 몇 차례의 결혼식 주례 경험을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는 신랑 신부에게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주례사를 했다. 일테면 결혼의 추동력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지는 않으므로 밥을 벌어먹는 물적 토대를 갖추어라. 삶이 요구하는 형식 - 내 배우자의 부모의 생일, 기념일, 안부를 챙기고 명절 때 인사하는 진부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존중하라. 결혼은 오래 같이 살아 생애를 이루는 것이므로 사랑보다도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연민을 가져라 등등.
그중에 남편과 아내가 요리를 배워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례사도 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적어도 주말에는 장을 봐서 스스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영양가 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섭생적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심성이 인격 안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 (···) 음식을 만드는 것은 경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 먹어보지 않은 맛을 미리 상상하는 힘이 작동되므로 요리는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고, 나는 주례사 내내 음식 얘기만 했다."
"저녁(점심)에 뭐 먹지?"
예전 아내가 음식을 전담할 때 혼잣말처럼 조금은 걱정하는 투로 말하곤 했다.
"아무 거나 먹어."
(아내의 걱정을 덜어준다는 투로 그러나 ) 무심히 내가 말했다.
아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아무 거나 뭐?"
"아무 거나 맛있는 거!" 나의 결론에 아내는 기가 막혀했다.
세월이 지나 내가 부엌일을 하면서 나 역시 같은 말을 같은 투로 말할 때가 있다.
"저녁(점심)에 뭐 먹지?"
아내는 잊지 않고 대답한다.
"아무거나 맛있는 거!"
(젊은 남편 여러분! 조강지처 앞에서 말조심합시다. 나이 들면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맛있는 거!
이게 얼마나 막막하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말인지 부엌을 맡으면서 알게 되었다.
두 끼 연속 같은 음식을 내놓기는 좀 그렇고, 몇 가지 음식을 로테이션하며 준비하자니 너무 구태의연한 것 같고, 그렇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계절이나 날씨에 어울리는, 새로운 음식을 매번 상위에 올리려니 실력이 모자라고······ 그러니 푸념처럼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된다.
"뭐 먹지?"
그래도 거르지 않고 끼니때마다 뭔가 만들어 먹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전. 비 오는 날씨와 어울리는 음식이라 장마철에 여러 번 만들어 먹었다.
가끔씩 맥주나 막걸리를 곁들여 먹으면 분위기도 좋다.
아내는 감자를 좋아한다. 감자전은 물론 감자구이에 삶은 감자까지.
삶은 감자를 아내는 소금에 찍어 먹고 나는 설탕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 나를 아내는 초딩입맛이라고 하수 취급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쌈이 있다.
쌈은 어려운 상대와 함께 먹기는 좀 '거시기'하다.
편한 사람과 마주 앉아 입을 마음껏 벌리고 싸 먹어야 제맛이다.
나는 삼겹살이나 참치를 싸서 먹지만 아내는 그냥 쌈장에 밥만 싸 먹는 걸 좋아한다.
"우리가 왜 부부가 되었지? 취향이 같은 게 거의 없잖아."
서로 신기해하며 먹는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휴대폰엔 매일 같이 폭염을 주의하라는 안전문자가 아침부터 쇄도한다.
이열치열이라지만 뜨거운 음식은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고역이다. 차가운 음식이 필요한 때다.
냉국과 냉채에 제격인 가지와 오이가 없으면 무얼로 한여름 식탁을 채우랴.
묵은 김치를 조리거나 볶거나 국으로 끓인 것도 아내의 취향이다. 이 음식들은 열을 가해야 하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게 만들어 먹어도 맛있다고 아내는 말한다.
김치콩나물국을 끓일 때, 그리고 갓김치를 볶을 때, 뭔가 마지막 맛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둘 다 멸치다시물을 사용했고 마늘과 양파와 파 등 공통 재료 외에 갓김치볶음에는 들깨가루를, 국에는 콩나물과 두부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는데도 2%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모종을 조치를 취하고 밥을 먹으며 아내의 반응을 주시했다.
아내는 김치콩나물국을 첫술을 뜨고는 "우와! 당신 이제 음식 솜씨가 경지에 올라섰나 봐! 국물 맛이 정말 끝내주네" 하며 검지를 세웠다.
두 번째 갓김치볶음을 한점 먹고 나서는 "이제까지 당신이 만든 음식 중에 One of the Best야! 이것만 있으면 다른 반찬 다 필요 없어!"라며 좋아했다.
나는 잠시 지켜보다 고백을 해야 했다.
"사실 라면 스프를 조금 넣었어······."
라면 스프를 두 번 사용했는데 그 맛의 차이를 아내는 두 번 다 기민하게 집어냈다.
나의 음식 솜씨가 까짓 라면 스프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 조금 억울하면서도 동시에 라면 스프의 위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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