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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책『지리의 힘』

by 장돌뱅이. 2023. 7. 10.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산맥과 같은 천연의 장애물이나 하천망의 연결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인구 통계, 문화 지역,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치, 군사 전략부터 시작해서 언어, 교역, 종교 등을 포괄하는 인류의 사회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명의 여러 국면에 중대한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

『지리의 힘』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세계의 주요 강대국과 지역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10개의 챕터 중 중국, 미국, 러시아, 우리나라와 일본만 읽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몇 가지만 발췌하여 옮겨본다.

중국
중국 선박들은 태평양을 향하든 인도양을 향하든, 남중국해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전히 난관에 직면한다. 하지만 중국에게 가스와 원유를 수송하는 이 물길이 없다면 중국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산유국과 통하는 바닷길에는 미국에게 우호적인 베트남, 필리핀이 있다.  그러고 나면  역시 외교군사적으로 미국과 연결된 밀착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가 마주한 말라카해협이 나온다. 길이 약 8백 킬로미터, 가장 좁은 곳의 너비가 채 3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이곳으로 중국 에너지 공급량의 거의 80퍼센트가 통과한다.
(다시 말하면 이곳이 봉쇄될 경우 중국에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이에 대비하여 중국은 미얀마 서부해안에서 시작해서 뱅골만을 지나 중국 남서부로 들어가는 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중국이 재작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일 것이다.)

미국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강국이다. 전쟁과 정복, 혹은 구매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국토를 지녔다.  동쯕 연안에서 서쪽 연안까지 거리가 4,828킬로미터나 된다. 해안에서 접근하려는 적대 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긴 보급로를 확보해야 한다. 육상부대도 별 수 없다. 남북으로도 천적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지정학적으로  '복 받은' 나라라는 뜻이다.

1949년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의 창설을 주도했다. 군 사령관은 늘 미국인이 맡는다. 나토의 가장 큰 화력부대는 미국이다. 나토의 창립멤버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영국, 이탈리아도 자국의 기지에 대한 미국의 권한과 접근을 보장해줌으로써 미국은 태평양뿐 아니라 북대서양과 지중해의 패권까지 쥐게 되었다. 1951년,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와 동맹을 맺고 남반구에도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지 한국전쟁 후에는 북쪽으로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아시아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아시아와 태평양에 거주한다. 특히 인도까지 포함하면 2050년경에는 아 지역이 세계 경제 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 개입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국이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이 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 한 예로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 해병대기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적대 행위가 발생했을 때 그들을 구하러 온다는 점을 우방국들이 확신하도록 제한적인 군사행동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중국과 관련해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 일본을 안심시켜 주는 것과 더불어 미군의 오키나와 연장 주둔을 보장받는 데 있다. 미국은 일본이 자위대 전력을 증강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군사력이 태평양에서 미국을 넘볼 만큼 성장하는 것은 제한한다.
(1950년 미국은 태평양연안 극동지역에서 소련과 중국에 대비한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으로 긋는 이른바 에치슨라인을 발표하며 한국을 방위선에서 제외한 적이 있다. 이는 한국전쟁의 한 이유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디서나 자신들의 계획을 관철하려고 할 뿐이다.)

미국과 대만이 맺은 조약에 따르면, 중국이 자국의 2번째 성으로 주장하는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개입하게 되어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촉발한 임계점은 미국이 대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경우나 대만의 독립선언이다. 
(이 예민한 사안에 우리가 섣불리 발언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면적은 미국이나 중국의 2배, 인도의 5배, 영국의 25배로 유럽에서 아시아에 걸쳐 있다. 러시아는 냉전시대에 미국을 중심을 한 나토에 맞서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유럽의 대다수 공산국가와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했다. 그러나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붕괴와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의 대부분이 나토나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급기야 모스크바에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 것이다.

특히 모스크바의 코앞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중요한 지역이다. 북유럽평원과 러시아 사이에는 어떤 자연적인 장벽도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이나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의 오랜 숙원인) 부동항인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 항의 임대차 계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신중한 중립국 행보만 보인다면,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중립적 행보의 폭을 넓혀가는 우크라이나가 괘씸하더라도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고 나토와 유럽연합이라는 서방의 양대 기구에 가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러시아 선박의 흑해 항구 입항에 반대한다면? 한 수 더 떠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군함을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물론 이는 현재로서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이 '어불성설'은 현실이 되어 러시아는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무력의 의한 문제 해결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강대국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 지도자로서는  좀 더 현명한 처신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어쨌거나 국민들을 재앙 속에 몰아넣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군분투가 마냥 고귀해 보이지만은 않는 이유이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 시위

미국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 배후에 부분적으로 관여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끌어내고자 했다. 이는 또한 푸틴 대통령의 힘을 빼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또한 독일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부를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를 지지했다. 서방 측은 서부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민주 세력을 육성하고 자금을 대면서 지식인 사회와 경제계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수도 키예프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번져 갔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동부에서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부 서향의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극심한 혼란 속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급히 피신을 하자, 친서방파와 파시스트파가 주축을 이루는 반러시아 파벌들이 우크라이나 정권을 장악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크림 반도를 합병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는 러시아와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에서 9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함에 따라 러시아와 합병을 결정했다. 러시아에게는 무엇보다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 항을 손에 넣는 것이 절실했다.

우크라이나가 벨기에나 미국의 메릴랜드에 버금가는 영토를 잃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러 달려오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해 제한적인 제재만을 가했다.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국가들이 겨울용 난방 연료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열거나 닫는 권한은 크렘린에 있다.
( 오래 누적된 역사적 모순, 인종 간의 갈등, 군사적 목적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이 전쟁에 우리가 관여할 부분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에 더하여 인도적인 부분밖에 없지 않을까?)

한국
한국의 요즘 상황은 구한말이나 우크라이나에 버금가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군사적 긴장도가 어느 때보다도 높고 블록화에 의한 양자택일의 압박이 거세다. 책에 나온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적 재무장은 한국인들이 느끼는 우려의 감정만큼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우리 정부가 너무 관대하게(혹은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이 건은 널리 알려진 사안이므로 책에 나온 우리 상황에만 주목해 보자.

한반도에서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이 터지는 것을 반길 자는 아무도 없다.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도 과거에는 그런 전쟁을 막지 못했다. 1950년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내려올 때 이 전쟁이 3년에 걸쳐 4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내고도 교착상태로 끝나리라는 것을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오늘날의 전면전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을 부를 것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북한보다 8배나 크고 인구도 2배나 많다. 한국과 미군의 연합군은 궁극적으로는 북한군을 압도하겠지만, 이는 중국이 한반도에 다시 개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을 가정할 때다.

동북아에서 펼쳐지는 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모든 배우들은 안다. 잘못된 순간에 답을 냈다간 자칫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을.  게다가 이만저만 크게 망치는 게 아니다. (남과 북) 두 나라의 수도가 잿더미로 변하고 내전과 인도주의적 재앙이 발생하고 도쿄나 시내나 주변에 미사일이 떨어지거나 한쪽이 핵무기를 가진 한반도 땅에서 중국군과 미군이 대처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걱정은 아니다.

만약 갑작스레 북한이 붕괴하거나 하면 이 국면은 국경을 넘는 전쟁, 테러리즘, 난민 등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전 세계 지도자들로서는 공공연히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날을 대비하자고 떠들다가 정말로 그날이 앞당겨져도 큰일이다. 그날에 대해 준비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상태에서는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일에 드는 대부분의 경제적 비용을 남한이 감당해야 하며 이럴 경우 독일 통일 이후처럼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동독의 경우 서독보다 뒤쳐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래도 일정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고 역사와 산업 기반 그리고 교육받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거의 맨땅에서 시작해야 할 처지다. 이에 소요되는 비용 때문에 통일된 한반도의 경제는 한동안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석탄, 아연, 구리, 철과 같은 북쪽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현대화된 프로그램 등이 시동을 걸 것이다. 다만 그 기간 동안 세계 최고로 발전된 국가 가운데 한 곳이 번영을 포기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복잡한 입장들이 있다.  
(결국 모든 답은 상대방에 대한 무력시위나 흡수통일에 있지 않고 공존과 평화에 있다. 아무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평온한 일상에 위협이 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묘안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의 나라 핵무기를 들여오겠다는 무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논의 당사자는 결국 북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개인적으론
지리적 특성은 역사를 결정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이지 원천적이거나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으로 산맥이나 사막, 강물 같은 자연적인 장애물이 이전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어서만이 아니라,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사회적, 국제적) 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일제의 관변학자들이 주장했던 이른바 '반도숙명론' 같은 식민사관의 냄새도 나기 때문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한반도 강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반도의 '불행한 역사'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교차하는 반도라는  지리적 상황이 낳은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이제까지 지녀온,  대륙 세력에 종속적이고 주변부적인 숙명은 일본의 온정적인 지배를 받음으로써 반도적 성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궤변이 지리적 결정론, '반도숙명론'이었던  것이다.

『지리의 힘』은 '지리적 결정' 요인에 주목하기 보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한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 팀 마샬( Tim Marshall)은 BBC 등에서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25년 이상 전 세계 30여 국의 분쟁 지역을 돌며 세게 각 지역의 갈등과 분쟁, 정치, 종파, 민족, 역사, 문화 등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파란색은 책에서 인용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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