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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겸재(謙齊) 정선(鄭敾)의 그림 넷

by 장돌뱅이. 2023. 3. 23.

일주일에 한 번 칼림바를 배우러 다니게 된 노노스쿨은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가까이 있다.
마침 근처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겸재정선미술관"이 있어 칼림바 첫 수업을 마치고 가보았다.
내가 갔을 때는 내부공사로 2층은 문을 닫아서 1층과 3층만 볼 수 있었다.
3월 16일 이후 재개관을 할 때 아내와 다시 한번 방문할 생각을 하면서 둘러보았다.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 화단 한쪽에 금빛 마네킹이 있다.
겸재의 그림 「독서여가(讀書與暇)」에서 따온 형상이다. 

*「독서여가(讀書與暇)」(간송미술관, 24.1cmX16.9cm)

겸재의 나이 60대 후반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독서여가(讀書與暇)」 -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툇마루에 비스듬하게 앉아 화분에 핀 모란꽃을 감상하는  자세가 한가롭고 여유롭다. 
뒤쪽으로 보이는 책장에는 빼곡한 책들이 단정하다.

*「양천현아(陽川縣衙)」(간송미술관, 29.1cmX26.7cm)

65세(1740년)에 겸제는 양천현령으로 부임하여 70세가 될 때까지 5년간 근무했다.
이 시절 겸재는 한강을 소재로 한 많은 진경산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그림 덕분에  지금은 사라진 옛 양천 관아의 진경을 보게된다. 
굵직굵직하게 그려진 지붕과 기둥의 선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양천현아는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으로 양천향교 근방에 있었다고 한다.

겸재가 양천으로 부임한 해 세밑에 오랜 친구인이었던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은 편지를 보낸다.

양천에 떨어져 있다 말하지 말게, 양천에 흥이 넘칠 터이니.

처자를 데리고 부임해 가면, 계옥(桂玉 : 보배)이 비로소 곳간에 들며.
비 온 뒤엔 선유객(船遊客)이 되고, 봄이 오면 세어(稅漁)를 그물질할걸.
오리와 백로들 바쁜 걸 보면, 날아와 이르는 것 문서 같으리.
(莫謂陽川, 陽川興有餘.
 妻努上宦去, 桂玉入倉初.

 雨後船遊客, 春來網稅漁.
 忽看鳧鷺迅, 飛到似文書.)

양화나루 건너 불과 삼십 리 지척에 있으면서도 서울집에 오지 못하는 겸재의 세밑 외로움을 위로하고자 보낸 편지 시(詩)다. 겸재는 이 시를 좋아했던지 「양천현아」의 우측 상단에 화제(畵題)로 넣었다. 그런데 화제 글자 중 '낙(落)'자를 '박(薄)' 자로 읽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어느 게 맞는지 나의 한문 실력으론 판단할 수 없다.

*「설평기려(雪坪騎驢)」(간송미술관, 29.2cmX23.0cm)

「설평기려(雪坪騎驢)」- '눈 내린 들에서 나귀를 타다'.
겸재가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해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무슨 일로 겸재가 새벽길을 나서기라도 한 것일까? 온통 눈으로 가득한 벌판에 움직이는 것은 나귀와 나귀 등에 탄 사람뿐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우장산이라고 한다. 저 텅 빈 양천들에 지금은 고층 건물들이 가득해진 것이다.

겸재의 '베프' 사천은 이 그림을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그림과 글로 나누는 두 사람의 우정이 격조가 높아 보인다.

길구나 높은 두 봉우리, 아득한 십리 벌판이로다.
다만 거기 새벽 눈 깊을 뿐, 매화 핀 곳 알지 못해라
(長了峻雙峰, 漫漫十里渚.
 祗應曉雪深, 不識梅花處.)

겸재미술관에서는 「설평기려」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인왕제색도 (리움미술관, 138.2cmX79.2)

1745년 양천현령의 임기를 마친 겸재의 나이는 70에 들어섰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력이 쇠퇴해갈 수밖에 없는 나이이지만 화가로서 겸재는 70대 이후가 절정이었다. 우리 미술사를 대표하는 걸작 중의 하나라 할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76세에 그렸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리움미술관에서 처음「인왕제색도」 원화를 대했을 때 오래 그 앞에 머물러야 했다. 우선 거대한 바위의 육중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해 왔다. 비가 개이면서 안개  속에 드러나는 바위는 박진감이 넘치고 장쾌했다.  (「인왕제색도」의 '제(霽)'는 '비 갤 제'이다.) 그러면서도 속도감 있는 필치로 치밀하게 묘사한 산자락과 소나무 숲과 조화롭게 다가왔다.

유홍준은 겸재 만년의 원숙미가 절정에 달한 작품, 사실상 겸재 예술의 최고봉으로 인왕제색도」와「박연폭포」를 꼽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미술사상 이런 위대한 화가는 겸재 이전에는 없었고 겸재 이후에도 그와 짝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오직 단원 김홍도가 있을 뿐이다." 

*「인왕제색도」의 봄
*「인왕제색도」의 여름
*「인왕제색도」의 가을

겸재미술관에서는 「인왕제색도」를 디지털로 변형을 가하여 인왕산의 사계절을 보여 주었다.
재미있고 상큼했다. 그중에서 나는 초록이 가득한 여름 풍경이 좋았다.

겸재가 만년에 이룩한 대작들을 떠올리며 작은 반성 비슷한 걸 해보게 된다. (위대한 화가가 이룬 불멸의 성취와 업적, 그리고 그런 삶에 감히 견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은퇴 이후, 겸재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핑계로 너무 일찍 어떤 열정조차도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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