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궁(七宮)은 경복궁 뒤쪽 청와대 가까이 있어 예전에는 사전 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했는데, 얼마 전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 양반이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아무 때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은 곳이 되었다. 그런다고 그 양반에게 '덕분'이라는 표현은, 글쎄 ··· 별로 쓰고 싶지 않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칠궁에 다다르기 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가 있다.
2016년 늦가을에서 2017년 봄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자주 왔던 곳이다.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청와대 쪽을 향해 "방 빼!"라고 외치곤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한데 세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씁쓸하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追尊)된 이들을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니었던 후궁 일곱 분의 사당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일곱 궁의 동쪽에서부터 아래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육상궁(毓祥宮) :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연호궁(延祜宮) : 추존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
덕안궁(德安宮) :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경우궁(景祐宮) :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선희궁(宣禧宮) :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대빈궁(大嬪宮) :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
저경궁(儲慶宮) : 추존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
원래는 육상궁만 있었다가 1908년에 저경궁, 대빈궁, 연우궁, 선희궁, 대빈궁, 경우궁을 합사(合祀)하여 육궁이 되었고, 1929년 덕안궁이 이곳으로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송죽재(松竹齋)의 '소나무와 대나무'는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한다.
육상궁을 지키는 관원들의 거처였다.
풍월헌(風月軒)은 송죽재와 같은 건물에 있다. 역시 관원들의 거처다.
풍월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淸風明月)'로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고상하게 가진다는 뜻이다.
송죽재와 풍월헌 앞마당에 말에서 내리는 하마석이 있다. 최근에 만든 듯 새물내가 난다.
냉천정(冷泉亭)은 영조의 어머니가 제삿날에 재계(齋戒)하며 제를 준비하던 곳이다.
냉천은 '차가운 샘'이라는 뜻이다. 순조가 썼다는 전서체의 현판은 단정하고 깔끔하다.
과감하게 단순화한 기교에서 현대적인 느낌도 준다.
냉천정 뒤쪽에는 이름에 걸맞게 '냉천'이라는 샘이 있다.
냉천의 샘물은 흘러내려 냉천정 앞에 네모난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의 돌에 자연(紫淵)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름처럼 자줏빛이 감돌거나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조는 즉위 후 효장세자(孝章世子)를 진종으로 추존했다. 정조는 효장세자의 양자였다. 영조는 세손인 정조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명색이 죄인인 사도세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수 없어 오래전에 9살의 나이로 죽은 이복 큰아버지 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만들었다.
연호궁(延祜宮)은 진종의 생모 정빈 이씨를 모신 곳이다. '연호'는 '복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현재 육상묘와 연호궁 현판은 한 건물에 걸려 있다.
연호궁이 앞쪽 추녀 밑에 걸려 있고 육상묘는 그 뒤쪽에 걸려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육상궁(毓祥宮)의 육상은 '상서로움을 기른다'는 뜻으로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예전에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 바로 궁중 나인에서 숙종의 후궁이 된 숙빈 최씨다. 영조는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재위 내내 정적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고 한다.
덕안(德安)은 '덕이 있고 편안하다'는 뜻으로 고종의 후비이자 영친왕 이은의 생모인 순비 엄씨의 신주를 모셨다. 현판의 덕(德) 자는 속자로 써 심(心) 자 위에 '일(一)'자를 뺐다.
덕안궁의 뒤쪽에는 세 채의 사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당을 바라보며 맨 왼쪽이 있는 저경궁(儲慶宮)은 추존 원종의 생모 인빈 김씨의 사당이다.
원종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의 아버지로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에 의해 대원군에서 왕으로 추존되었다. 조선 건국 이후 왕세자를 겸임하지 않고 왕으로 추존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한다.
대빈궁(大嬪宮)은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수 차례 만들어진 희빈 장씨, 흔히 말하는 '장희빈'의 사당이다. 조선 19대 왕 숙종의 빈이며 20대 왕 경종의 생모이다. 대빈은 '큰 부인'이라는 의미이다.
(*이전 글 : 서오릉 - 숙종과 여인들 )
경우궁(景祐宮)은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신주를 모셨다.
'경우'는 '큰 복'이라는 뜻이다.
선희궁(宣禧宮) 은 사도세자(장조)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이다. 사람에게 가장 참혹한 일이 무엇일까? 참척(惨慽)이라 하는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이다. 게다가 자식을 죽인 당사자가 남편이라면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빈 이씨가 그렇다. '복을 널리 편다'는 뜻의 '선희'가 그녀의 생애와 겹치니 애처롭게 느껴진다.
경우궁과 선희궁은 합사 되어 있다. 선희궁의 현판은 사당 뒤쪽에 걸려 있다는데 찾지 못했다.
육상궁과 연호궁도 그렇고 앞쪽에 나란히 걸면 규범에 어긋나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삼락당(三樂堂)은 송죽헌과 풍월헌의 뒤쪽에 있다. 칠궁의 살림을 사는 안채 격인 건물이다.
들어갈 수 없게 막혀 있어 담 너머로 현판을 넘겨다 보았다.
삼락은 '세 가지 즐거움'이다.
맹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부모 형제가 무고하고,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고, 공자는 '예악으로 절제하기를 즐기고 남의 착한 점을 말하길 즐기고, 어진 벗이 많음을 즐기면 유익하다'고 했다. 나로서는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나의 삼락은 즉물적이다. '아내와 걷고, 보고, 먹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손자를 돌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으니 나는 즐거움에도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칠궁에서 나와 통인시장에 들렀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의 영향인지 문 닫은 가게가 많았다. 옛날에는 주변 주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의 큰 시장이었다지만 이제는 다분히 관광용으로 바뀐 느낌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는 사이 일본인인 듯한 젊은 여행자가 매운 떡볶이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국말로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출출한 속을 반반(매운맛 + 간장맛) 떡볶이로 채웠다. '걷고 보고 먹는' 우리들만의 '삼락'을 완결(?) 짓는 또 한 번의 하루였다.
'여행과 사진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복궁의 현판 1 (0) | 2023.05.06 |
---|---|
서촌 문학기행 (0) | 2023.04.29 |
성북동 나들이 (2) | 2023.03.26 |
겸재(謙齊) 정선(鄭敾)의 그림 넷 (0) | 2023.03.23 |
도다리쑥국 먹고 덕수궁 가기 (0) | 2023.03.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