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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경복궁의 현판 1

by 장돌뱅이. 2023. 5. 6.

경복궁은 조선 초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뒤 맨 처음 지은 궁궐이다.
'경복(景福)'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따르면 한양 천도를 주도한 정도전은 '술은 이미 취하였고(旣醉以酒) 덕에 이미 배부르니(旣飽以德) 군자께서 만년토록(君子萬年) 큰 복을 누리소서(介爾景福)'라는 『시경(詩慶)』의 시를 외우며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였다(請名新宮曰福)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이 탄 후 방치되었다가 1867(고종4)년에 중건되었으나 다시 일제에 의하여 건물 400여 칸이 철거되는 치명적인 훼손을 당하여 원형을 상실했다. 이후 경복궁 정면에 일제가 세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강녕전, 자선당, 흥례문, 건청궁 등 여러 전각들이 복원되었다. 

세종로 네 거리에서 백악산과 광화문을 보며 광장을 걸어갔다.
산능선과 지붕선이 만드는 풍경이 깔끔했다.
사진 속 전탑 모형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기념일이 지나면 없어질 설치물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光化)는 '군주의 덕이 온 천하에 빛난다'는 의미이다.
2006년까지 광화문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체였다. 광화문 복원공사를 하면서 흥선대원군 중건 당시의 현판을 복원하여 걸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임태영(任態瑛)이다.  그는 1865년 훈련대장으로 경복궁 중건 공사를 총지휘했고 광화문 현판을 썼다. 그런데 최근에 광화문의 원래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현판이 다시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현재 광화문 정면에 공사가 있어 현판 사진을 제대로 찍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현판과 글씨 아래 부분이 잘린 상태로 휴대폰에 담아야 했다.  

광화문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이, 그 좌우의 문으로는 신하들이 다닌다.
사진은 흥례문을 바라보며 왼쪽 문이다. 

흥례문(興禮門)의 원래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홍례문(弘禮門)으로 바뀌었으나 중건을 하면서 흥례문이 되었다. '흥례(興禮)'란 '예를 일으킨다'라는 의미이다. 2001년 흥례문 복원하면서 설치한 현판은 글씨는 서예가 정도준이 쓰고 각자(刻字) 기능 보유자 오옥진이 새겼다고 한다. 

흥례문 구역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들렸다. 주위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들으니 마치 중국의 자금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코로나로 갇혔던 제한에서 풀린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보복여행'을 시작한 듯했다. 4월 말에서 5월 초 중국 노동절 연휴에는 무려 2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여행에 나서 중국 내 유명 관광지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유화문(維和門)은 흥례문 서쪽 행각에 있다. 1867(고종4)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었다.
관원들이 서쪽 궐내 각사와 빈청을 원활히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문이다.
'유화'는 '예를 실천함에는 조화로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흥례문과 같이 현판의 글씨는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유화문 옆에 붙어 있는 기별청(奇別廳)은 왕명을 출납하는 기관인 승정원에서 매일 발행했던 조보(朝報)를 만드는 곳이다. 조보는 일종의 신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기별'은 '소식을 알린다'는 뜻이다.
2001년에 설치된 현판은 서예가 정상옥이 예서체로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덕양문(徳陽門)은 유화문과 기별청의 맞은편인 동쪽 행각에 있다. '덕양'은 '덕이 밝다'라는 뜻이다.
2001년에 제작한 현판의 '덕(德)'는 속자로 써서 '心'자 위의 '一' 획을 생략하였다.
(덕양문 앞쪽이 공사 중이어서 현판 사진은 문화재청이 발간한 책에서 옮겨왔다.
다음번에 다시 찍어 대체할 생각이다.)

이외에 광화문에서 흥례문에 이르는 좌우 담장에  용성문(用成門)과 협생문(協生門) 이 있다.
용성문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통하고 협생문은 수문장 교대식 때 경비 군사들이 입장을 하는 하는 통로인데,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든 문인지 아니면 최근에 편리를 위해 뚫은 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경복궁 홈페이지에도 이 문에 대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다. 

나의 빈약한 한문 실력으로 궁궐의 현판이나 주련을 제대로 읽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을  들고 가 궁궐의 처마 아래 앉아 아내와 함께 공부 삼아 읽어야 했다. 이상의 글은 그 내용을 정리해서 옮겨본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엔 붉은 동그라미 친 부분만 돌아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피곤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지만 한 번에 조금씩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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