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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성북동 나들이

by 장돌뱅이. 2023. 3. 26.

한성대입구역 근처 "국시집"은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이다..
성북동이나 대학로를 나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리는, 30년 이상된 우리 가족의 단골집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구수한 칼국수 맛이 한결같다. 아내와 나는 처음엔 나온 그대로의 슴슴한 맛을 즐기다가 반쯤  먹고 나면 파와 고춧가루를 다진 양념을 넣어 두 가지 맛으로 먹는다. 이번엔 오래간만이라 작은 수육 한 접시도 더했다. 역시 변함없는 맛이었다.

칼국수와 수육 이외에는 대구전과 문어숙회가 메뉴의 전부였는데,  뜬금없이 LA갈비가 메뉴에 올라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에는 기왕의 안주만으로 충분해 보이는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자구책으로 메뉴의 다변화를 꾀한 것일까?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나로서는 칼국수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노포의 변화가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최순우옛집은 성북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어 역시 이 부근에 올 때마다  수수한 분위기가 좋아 빼먹지 않는 곳이다.
(*이전 글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1)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1

성북동(城北洞)은 서울 도성의 북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는 일제 강점기나 해방 이후에 지어진 ‘개화된’ 조선집들이 밀집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개발에 떠밀리며 위축되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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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내부 수리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4월이 지나야 다시 문을 열 것 같다. 나뭇가지가 팔을 벌려  하얗게 핀 꽃을들어 올리고 있는 담장 너머를 바라보며 지나쳐야 했다.  

이번 나들이의 주된 목적은 "성북동 별서(別墅)"에 가보는 것이었다. '별서'는 별장과 비슷하다. 일반인에게 공개하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없었지만 그냥 산책 겸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성북동 별서"로 가는 길에는 호사스러운 집들과 대사관, 그리고 대사관저들이 널찍한 도로 좌우로 줄지어 서있다. 이따금씩 차들만 오고 갈 뿐 걸어 다니는 사람도 적어 적막하다.
보통의 마을처럼 편의점이나 식당, 카페 등의 간판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할아버지 능력으로 손자들을 이런 집에서 뛰어놀게 할 수 없을까?"
아내는 높고 견고한 담장의 마을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나를 놀리기도 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성북동성당의 깔끔한 모습도 주변의 집들과 잘 어울렸다.

"성북동 별서"는 '담양 소쇄원·보길도 세연정에 필적할 정도로 아름다운 서울의 대표적인 원림'이라고 알려져 왔다. 원래는 '성락원(城樂園)'이라고 불러왔으나 문화재 지정을 두고 우여곡절을 거듭하다가 현재는  "서울 성북동 별서(명승 제118호)"가 되었다고 한다. "성북동 별서"의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온 길이기에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자주 가던 성북동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고 나를 놀라게 했던 한 장의 사진 속 풍경을 보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서울 성북동 별서 (출처 :연합뉴스)
* 문 닫힌 성북동 별서

'성북동 별서'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선잠단(先蠶檀)이 있다. 조선시대 중요한 국가 의례인  선잠제가 열렸던 곳이다. 선잠은 인간에게 양잠을 처음 알려준 서릉씨(西陵氏)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행사에는 왕비가 직접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번 나들이의 마지막 방문지는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수연산방이었다.
 
수연산방 앞에 이르면 화강암 마름모꼴 석축 위의 콩떡 담장에 반듯한 일각대문이 있다. 그 너머로 엇비스듬히 팔작지붕이 보이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마당의 오른쪽에 본채, 왼쪽에 별채가 있다. 담장 높이, 마당 넓이, 집 크기의 비례가 아주 쾌적하다.
두벌대 축대 위에 올라앉은 본채는 기역자 집으로 돌계단 위로 대청마루가 넓게 열려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사가 돌기둥 위에 번듯한 누마루가 서 있어 이 집의 기품을 자랑한다. 집안 구조를 보면 대청마루 오른쪽으로는 안방과 부엌의 살림 공간이 있고 왼쪽으로 서재를 겸한 건넌방이 있는데 건넌방 툇마루는 방보다 약간 높고 멋스러운 아자(亞字) 난간을 두르고 있다. 이태준은 이 집을 지을 때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있던 자신의 안목을 유감없이 구현했다. 이태준은 목재부터 생목을 쓰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철원의 고가를 해체한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목수도 고급 인력을 썼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중에서 -

인용한 글 속 '콩떡 담장'이란 말이 재미있다. 실물을 보면 그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연산방은 이제 널리 알려졌는지, 몇 해전 처음에 갔을 때와는 달리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를 반영하듯 직원은 두 시간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신설된 이용 제한 규정을 알려주었다. 이제까지 그보다 길게 머무른 적은 없었지만, 아내와 혹은 지인들과 성북동 나들이의 마지막 장소로 이용하던 이곳을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이전 글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3)

 

지난 국토여행기 2 - 서울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3

심우장을 내려와 지하철역 방향으로 5분쯤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붉은 벽돌로 깔끔하게 지어진 덕수교회를 보게 된다. 수연산방은 그 맞은편 성북2동사무소 옆에 자리 잡고 있다. 1998년에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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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옛집은 공사 중이고 '성북동 별서'는 문이 닫혀 있고, 조용하던 수연산방은 번잡스러워졌지만, 따뜻한 봄 날씨에 아내와 함께 해찰을 부리며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풍경과 상황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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