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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

1997홍콩1 - 홍콩에 대한 기억

by 장돌뱅이. 2012. 5. 29.
딸아이의 여행기와 함께 내가 써놓았던 파일도 보게 되었다.
일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것인양 반갑다.
대단히 늦은 여행기지만 그 당시에는 인터넷에 내 집이 없었으므로
지금이라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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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방이 어디 있죠?”
“무슨......가방......?”
“제가 가지고 온 네모난 가방요. 여기 다 놨었는데.....?”

나는 종업원이 치워놓은 걸로 생각하고 무심히 물었다.
순간 그 여종업원은 몸을 돌려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엔가 황급히 연락을 하였다.
종업원의 행동은 이런 일에 많은 경험이 있는 것처럼 신속하였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가게로 몰려왔다. 백화점의 안전요원들이였다.
선임자인 듯한 사내가 내게 가방의 모양과 색깔 내용물 등을 물었다.
나의 가방은 우리가 흔히 007가방이라고 부르는 검은 색의 네모나 서류 가방이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안전요원들은 이내 흩어졌다.
그는 내게 이런 경우 가방은 흔히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발견된다며,
현재 모든 출입구에서 내 것과 같은 모양의 가방을 소지한 출입객들을
감시하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가게에 들어선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가방을 도둑맞은 것이다.
그것도 동남아 각국마다 체인을 갖고 있는 일본계의 유명한 SOGO 백화점
안에서 말이다.

평소 나는 해외여행 중 가방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곳은 백화점 안이라 잠시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예정했던 모든 일이
끝나 귀국하는 일만 남은, 출장 마지막 날의 느슨한 기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고 점포 안쪽에 가방을 놓고 잠깐 등을
돌린 사이 - 점원은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고 나는 선물에 신경을 써야 했던
그야말로 잠깐 사이였다.

천만다행으로 지갑과 여권, 비행기표 등은 가방 안에 없었다.
돈이 될만한 것은 낡은 자동카메라뿐이어서 도둑도 무척이나 재수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명함철과 계약서 원본 등 업무상 필요한 서류가
그 안에 있었다.

선임자는 내게 자신들의 사무실로 가서 기다리자고 하였다.
그 곳에서 분실물에 대한 기록을 간단히 작성하고 앉아 있으려니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분실물 신고를 하러 왔다.
어느 여자는 돈이 든 가방을 소매치기 당했다며 엉엉 울기도 했다.
홍콩은 안전한 곳이지만 좀도둑은 제법 있는 곳이구나 하는 것을
그 날 SOGO백화점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결국 가방을 찾지 못했다.
채 5분이 안된 시간에 가방은 벌써 백화점 밖으로 빠져 나간 것이다.

홍콩 여행을, 아니 모든 외국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즐거움 속에서도
이런 문제에 관한 한 긴장을 풀지 말아야겠다. 중요한 것이건 아닌 것이건
잃어버린다는 것은 허망한 일이며 언제나 실제보다 커 보이기 때문이다.
1990년 대 중반 무렵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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