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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

1997홍콩5 - 홍콩 돌아다니기

by 장돌뱅이. 2012. 5. 29.

아침 식사를 위해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음식점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우리완 다른 모습이다.
술 마신 뒷날 해장국이라면 모를까 아침을 외식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많은 여자들이 가사에만 주력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는 지도 모른다.

속 모르는 외국인들이 더러 한국은 여자들의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한 가족의 생활이 영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많은 여성들이 일을 원하고 있음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는 말이다.

홍콩에선 무엇을 보아야 할까?
사실 홍콩은 유서 깊은 유적지나 화려한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이 아니고
뛰어난 자연경관이 있는 곳도 아니다. 몇 개의 절과 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에선 그냥 거리를 걸어볼 일이다. 거리 어디나 끊임없이 흐르는 인파 속에
파묻혀 길가의 가게를 구경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 볼일이다. 홍콩만큼 다양한 인종이 몰려있는 장소가 또 있을까?
전차를 타거나 이층 버스를 타보기도 하면서 차창으로 스쳐가는 각양각색의
상점과 식당의 화려한 간판들에도 눈길을 줄 일이다.
홍콩의 간판이라니! 나는 홍콩을 생각하면 상점 간판으로 뒤덮인 침사추이
(尖沙咀) 거리를 떠올리곤 한다. 때문에 홍콩은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거리를 걸으면 된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여행에서 바라는 것들을
저절로 얻을 수 있게 된다.

아침을 먹고나서 우리는 그런 생각으로 거리를 걸었다.
백화점과 절을 거쳤지만 특별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 구룡반도 쪽을 걸었으니 오늘은 홍콩섬 쪽을 걷는다는 것이 틀리다면
틀린 것이다. 허리우드 거리와 캣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서보기도
하고 난장이 들어선 도로에선 천천히 구경도 하면서 유행가 가사처럼 그냥 걸었다.

홍콩의 도로는 매우 좁다.
높은 빌딩 사이의 좁은 도로는 상대적으로 더 좁아져 보인다.
그런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있다 보면 사람들이 빨간 불인데도
차만 없으면 서슴치 않고 길을 건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질서한 교통의식이라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태연히 하는 일이라
이것이 홍콩의 방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길을 건너 가버렸는
데도 우리만 우두커니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었던 적도 있다.
차량은 자신이 가야할 차례인데도 사람이 건너고 있으면 경음기 소리를 내어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준다. 차는 반드시 신호등을 따라야 하지만 사람은
안 그래도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가끔씩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도로의 넓이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넓고 직선적인 도로, 그래서 차가 시원스럽게
빠지는 도로를 선진국형으로 생각하며 산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인간보다 차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 넓은 도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게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직선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홍콩의 도로가 그런 점을 고려해서 좁다는 뜻은 아니지만.  

오후엔 해양공원으로 향했다. 딸아이를 위한 일정이다.
해양공원은 홍콩섬의 남쪽에 위치한 놀이공원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산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는 돌고래쇼와 물속에서 헤엄치는 상어를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SHARK 터널 등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홍콩이 아니어도
어디선가 한번씩 본 적이 있는 것들이어서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쾌청한 날씨 덕분에 공원 정상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던 푸른 바다와
주변의 섬들이 인상적이었다. 바다는 어제 저녁 빅토리아 피크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경쾌한 푸른색이었다. 230여개나 된다는 홍콩의 섬들은
그 푸른 바다에 초록으로 혹은 검은 점으로 박혀 있었다.
    
해양공원 정상에서 내려올 때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는 산등성이를 휘감아 오르내리며 굉장히 긴 거리를 운행했다.
딸아이는 재미있어했고 아내는 좀 무서워했다.

우리 가족은 여행중 먹거리에 대해 신경을 쓰는 편인데 급작스럽게 마련된 이번
여행에서는 그에 대한 준비가 부실했다. 더군다나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는 홍콩에서 그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점보레스토랑(珍寶 : JUMBO RESTAURANT)을 생각한 것은 그곳이 홍콩의
야경과 함께 홍콩을 소개하는 책자나 엽서에 흔히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점보식당은 해양공원에서 멀지 않은 애버딘 항구에 정박해 있는 대형 선상 식당이다.
애버딘(ABERDEEN)은 영국의 한 어촌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홍콩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는 원래 이곳에서 수상 가옥에서 생활한다는 어민들을 보고 싶었는데
해양공원에서 내려오자 이미 저녁 때가 되어 점보식당만 다녀 올 수밖에 없었다.

점보 식당은 선착장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배를 타면 채 5분이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바다에 떠 있다. 지금까지 약 3천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하니 가히 홍콩을
대표하는 식당이라 할 수 있겠다. 홍콩 돈으로 3,0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지었다는
이 거대한 식당은 한꺼번에 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무엇이건 너무 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세계 최고’니 ‘아시아 최초’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흔히 실속 없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점보레스토랑을 향하면서도 그런 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혹 휘황한 겉치장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중요한 음식과
서비스는 대량 생산하는 공장 같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에서였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식당의 모습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 거대한 궁전이었다.
식당을 감싼 현란한 불빛이 물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점보 식당은 많은 사람이 다녀갈 만한 이유가 있는 곳이었다.
종업원은 친절했고 음식맛도 훌륭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흡족함을 표시하였다.

점보식당을 나와 우리는 동라만 (銅鑼灣, CAUSEWAY BAY)로 갔다.
SOGO백화점에 들러 구경하고 생각이 난 김에 오래 전 잃어버린 가방의 행방을
물어본 후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낡은 기록은 있었지만)
시대광장(時代廣場 TIME SQUARE) 주변을 걸어 다녔다.
오늘은 꽤 오래 걸어 다녔음에도 아내와 딸아이는, 특히 딸아이는 지친 기색이 없다.
홍콩의 거리가 매력이 있단 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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